석유 이어 우유값도 추락…공급과잉 몸살앓는 낙농업계

최정희 기자I 2015.02.23 14:47:27

우유 가격 6년만에 최저치..50% 급락
하반기 지나야 가격 상승 가능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공급 과잉과 중국 경기 둔화를 필두로 한 수요 감소로 가격이 폭락하는 곳은 석유만이 아니다. 우유값도 전세계 낙농업계의 숨통을 죌 만큼 폭락했다.

우유 등 유제품 가격 폭락은 중국에 대한 잘못된 수요 예측 및 그에 따른 공급 과잉, 4월로 예정된 유럽연합(EU)의 우유 할당제 폐지, 러시아의 식료품 수입금지 조치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있다. 우유 가격은 올 하반기를 지나야 반등할 것으로 예측됐다. 그것도 아주 조금 오르는 데 그칠 전망이다.

<자료: 월스트리트저널(WSJ)> 전 세계 우유 생산량 및 중국으로의 수입 가격


◇ 잘못된 中 수요 예측..공급 과잉으로 번져

2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글로벌 낙농 무역(GlobalDairyTrade, GDT)에서 거래된 우유 분말은 지난해 12월2일 현재 2229톤으로 전년동기보다 55%나 급감했다. 6년래 최저치다. 중국의 지난 11월 우유 가격 역시 연초대비 50% 가량 급락했다.

지난해 전세계 우유 생산량은 올해 4억9280만톤으로 5년 전보다 10% 가량 증가할 것으로 미국 농무부는 예측했다. 유제품의 공급 과잉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유제품 시장인 중국에 대한 수요 예측이 잘못된 영향이 가장 크다.

2008년 중국 유제품 멜라민 오염 파동으로 6명의 아이가 죽는 사고가 발생하자 중국 정부는 품질 기준을 강화했다. 그로 인해 몇몇 농장은 퇴출됐고,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우유 공급이 모자랄 것이란 전망이 많아졌다. 이에 중국은 2013년 우유를 62만2000톤 수입해 1년 전보다 47% 늘렸다. 그 해 중반 우유 가격이 치솟자 중국 내에선 소규모 낙농민들이 시장에 진출해 생산을 늘리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지난해 중국 내 우유 생산은 3600톤으로 5% 가량 증가했다. 지난해 1분기엔 1년치 수입 분량인 93만톤의 분유를 수입했다.

우유 가격 상승에 대한 강한 믿음은 중국의 경기 둔화와 함께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철광석, 구리 등과 마찬가지로 중국 수요 감소가 가격 하락에 상당한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4월로 예정된 EU 낙농업계의 쿼터제 폐지도 가격 하락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1984년부터 EU내 국가들은 우유 생산을 억제하기 위해 정부가 생산량을 할당하는 방식을 채택해왔으나 이를 폐지하기로 한 것이다. 낙농업계는 쿼터제가 폐지되면 낙농가는 이익을 늘리기 위해 생산을 증가하거나 이 업계를 떠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영국 웨일즈농민연합은 “쿼터제를 폐지하면 농민들이 이익 증대를 위해 더 많은 우유를 생산할 수 있단 우려에 가격이 급락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미 영국 낙농업계는 우유를 리터당 19페니(324원)에 팔았다. 2007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발트 연안의 농가는 리터당 16페니(273원)로 팔 정도로 우유 가격이 더 낮았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가 지난해 8월부터 유럽연합(EU) 및 미국 등으로부터 식료품 수입 금지에 나선 것이 우유 폭락에 불을 붙였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관련 서방국가의 제재에 대한 보복조치였다. 러시아는 EU의 최대 치즈 수입국으로 10억유로(1조2640억원) 규모의 시장이다.

<자료: 월스트리트저널(WSJ)> 중국인 낙농업계에선 암소를 학살하거나 우유를 버리고 있다.


◇ 가축 학살하는 낙농업계

영국 전국농민연합(NFU)의 시안 데이비스 수석 유제품 고문은 “올해 3분기까지는 나아질 기미가 없다”며 “농민들은 떨어진 가격을 감당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소를 추려 생산을 줄이거나 업계를 떠날지 여부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영국 낙농업계는 우유 가격이 더 떨어지면 낙농업계 종사자 수도 급격히 감소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1995년에 3만6000명이던 낙농민은 최근 1만명 이하로 감소했다. 2025년까지 5000명 이하로 줄어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NZX농업의 낙농 애널리스트 수잔 킬스비는 “유가가 오르기까지 6개월 정도가 걸릴 것”이라며 “6개월 전망해도 뉴질랜드 농부만 우유 급락을 경험했으나 전 세계로 이런 현상이 번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선 공급을 줄이기 위해 암소 등을 학살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16년간 낙농업계에 종사한 한 중국인 낙농민은 “보유하고 있는 가축의 20%인 180마리의 가축을 학살했다”며 “한 달에 10만 위안(1700만원)의 손실을 입었다. 가격이 하락할 경우 나는 더 가축을 죽여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유제품 수출국가인 뉴질랜드는 우유값 폭락에 따른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뉴질랜드 중앙은행은 유제품 가격 하락이 국가 경제의 가장 큰 위험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유 급락에도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은 크지 않다. 호주나 유럽의 통화가치 하락이 우유 수입가격 하락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주 최대 낙농 생산업체인 머레이 골번의 전무 이사 개리 할로는 “우유의 글로벌 가격이 50% 가량 하락했지만 소비자 가격은 12% 밖에 하락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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