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장면, 방송해도 될까요?" 드라마도 법률검토부터[별별법]

성주원 기자I 2025.08.06 07:30:00

■다양한 주제의 법조계 이야기
OTT 시대, 할리우드식 사전 법률검토 도입
명예훼손·저작권·초상권 리스크 미리 차단
창작 제한 아닌 글로벌 유통 위한 안전장치

[장현지 법무법인 디엘지 변호사] 드라마, 예능, 영화 등 영상 콘텐츠 제작 현장에서 법률 자문이 필요한 순간은 생각보다 훨씬 많다. 특히 최근에는 제작사로부터 대본이나 영상 편집본에 대한 ‘법률검토보고서(legal clearance report)’, 즉 대본조사보고서 또는 영상조사보고서의 작성을 의뢰받는 일이 부쩍 늘었다. 법률검토보고서는 사전에 해당 대본 또는 영상에 관한 법적 리스크를 검토하고 정리한 문서로, 촬영이나 방송을 앞둔 콘텐츠에 대한 일종의 법적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

장현지 법무법인 디엘지 변호사
‘대본조사보고서’ 및 ‘영상조사보고서’는 사실 미국이나 영국처럼 영상산업이 발달한 국가에서는 이전부터 정착된 제작 관행이기도 하다. 할리우드에서는 드라마나 영화에 실존 인물이나 기업, 브랜드 등이 소재로 활용되거나 표현에 포함되는 경우, 사전에 법률 검토를 거치는 것이 사실상 필수로 여겨진다. 방송사, 배급사, OTT 플랫폼 등은 콘텐츠의 유통에 앞서, 제작사에 대해 제작보험(E&O insurance)에 가입할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고, 이러한 보험 가입을 위해 필요한 서류가 바로 외부 법률 전문가에 의한 법률검토보고서이기 때문에, 사전 법적 검토 절차가 사실상 필수 단계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에는 OTT 플랫폼의 부상과 함께 글로벌 유통을 고려한 제작 환경이 확대되면서, 이러한 시스템이 점차 국내 제작현장에도 도입되고 있는 분위기다. 넷플릭스, 디즈니+ 등 글로벌 OTT 플랫폼이 국내 제작사로부터 콘텐츠를 공급받는 과정에서 제작사 측에 보험 가입을 요구하고, 보험 가입의 심사과정에서 법률검토보고서의 제출이 필요해지면서, 국내 제작사들 역시 점차 사전 법률검토를 제작과정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러한 법률검토보고서가 국내 제작환경에 도입되기 시작한 배경은, 콘텐츠 유통 구조의 변화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과거에는 국내 방송사가 기획부터 송출까지의 대부분의 역할을 담당하였기 때문에, 방송사의 내부기준에 따라 문제 요소를 자체적으로 수정하거나 삭제, 편집하는 방식으로 법적 리스크를 관리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콘텐츠의 기획 및 제작을 외주 제작사가 전담하게 되는 경우들이 점차 보편화되고 있고, 콘텐츠가 다양한 OTT 플랫폼 및 해외로 유통되면서, 과거와 달리 콘텐츠의 기획·제작과 송출·방영의 주체가 분리되는 구조가 일반화되었다.

이로 인해 방송사나 플랫폼은 더 이상 법적 책임을 전적으로 감수하지 않고, 콘텐츠를 제공하는 제작사에 대해 사전 법률검토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리스크를 관리하고 있다.

더불어 오늘날의 콘텐츠는 일단 공개되면 단시간 내에 온라인과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광범위하게 확산되기 때문에, 문제가 발견되더라도 이를 수정하거나 회수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일단 공개된 장면이 제3자에 의해 캡쳐되거나 2차 콘텐츠로 재가공되어 유통되면, 원본을 삭제하더라도 이미 통제 범위를 벗어나게 된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사후적 피해는 단순한 콘텐츠 원본의 정정이나 편집으로 해결되지 않으며, 방영 중단, 광고 계약 해지, 투자 철회, 손해배상청구 등으로 이어져 제작사와 플랫폼 모두에게 막대한 비용과 리스크를 초래할 수 있다. 이처럼 사후적 대응은 비용과 피해 측면에서 훨씬 큰 부담을 수반하기 때문에, 사전에 법적으로 문제될 수 있는 요소를 철저히 검토하고 걸러내는 작업은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사전 대응 전략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본조사보고서와 영상조사보고서에서는 콘텐츠에 포함된 각종 표현과 요소들이 법적으로 문제될 소지가 있는지 여부를 다각도로 검토한다. 주요 검토 항목 중 하나는 (특히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 명예훼손이나 모욕에 해당할 수 있는 출연자의 발언 또는 자막의 내용이다. 특정 인물 등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가 포함된 경우, 그것이 해당 그 인물의 사회적 평가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는지, 또는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범위 내의 표현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한다.

더불어 사생활 침해 및 퍼블리시티권, 초상권 관련 검토도 중요하다. 촬영 중 화면에 우연히 포착된 인물의 얼굴이나, 유명인의 이름·얼굴·목소리 등이 등장하는 경우와 관련해서도 법적 리스크 분석이 이루어진다.

저작권과 상표권 등의 침해 여부에 대해서도 검토가 이루어진다. 콘텐츠 내에 삽입된 음악, 사진, 영상 클립, 배경 소품 등 제3자의 저작물이 활용된 경우, 적절한 이용허락이 이루어졌는지를 확인하며, 특정 상품이나 로고 등이 화면에 노출될 경우에는 무단 사용으로 인한 침해 가능성을 검토한다.

그 외에도 출연자, 협찬사, 제휴사 등과의 계약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의무 위반이나 권리 침해 소지를 확인하고, 사전에 필요한 법적 조치나 보완 조치를 권고하기도 한다. 이처럼 법률검토보고서에는 다양한 법적 기준이 복합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콘텐츠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법률 전문가의 개입이 필수적이다.

실무에서는 대본과 편집본이 수시로 변경되고, 제작 일정은 늘 촉박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든 법적 리스크를 완벽히 점검하는 것은 이상에 가깝고, 일부 제작진은 법률 검토가 창작의 흐름을 방해한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법률검토보고서는 창작을 제한하기 위한 검열이 아니라, 오히려 콘텐츠가 더 널리, 자유롭게 유통될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장치이다. 법률검토보고서는 제작 시의 불확실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창작물의 생존력을 높이는 ‘전략’으로 인식될 필요가 있다.

■장현지 변호사 △일본 와세다대 국제교양학부 △영국 옥스퍼드대 미술사 석사 △대림문화재단 대림미술관/디뮤지엄 큐레이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변호사시험 11회 △(현)법무법인 디엘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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