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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유체 시스템은 일명 ‘칩 위의 실험실(lab on a chip)’로 각광받는 분야다. 마이크로미터(μm) 크기 지름의 미세한 관 안에 액체방울 흐름을 조종하는 방식으로 각종 시료를 처리할 수 있어 연구의 용이성과 장점이 크기 때문이다. 그간 단순한 경로로 이뤄진 미세유체 시스템은 수없이 많이 연구된 반면 길고 복잡한 네트워크를 흐르는 미세유체 연구는 이뤄진 적이 없었다.
연구진은 미세유체 시스템에 네트워크를 처음으로 적용했다. 두 갈래로 갈라지는 네트워크에 액체방울을 일정한 간격으로 흘려 보냈고 일정 시간이 경과하자 주기운동이 관찰됐다. 연구진은 실험과 시뮬레이션 모두에서 주기운동을 관찰하는데 성공했다.
실험에 사용된 네트워크는 출발점에서 갈라지는 두 경로가 완전히 대칭을 이루기 때문에 액체방울들이 각 경로를 택할 확률은 50 대 50으로 같았다. 흘려 보낸 액체방울들은 처음에는 두 경로로 고르게 흩어졌으나 곧 편향성이 생기기 시작했다. 액체방울들이 열차처럼 줄을 지어 한 경로를 선택하면 다음 액체방울들은 다른 경로로 출발하는 주기운동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연구진은 균일한 흐름이 있던 네트워크에도 주기운동이 발생하는지 확인하고자 추가 실험을 진행했다. 먼저 네트워크 내에 균일한 흐름을 만들기 위해 액체방울을 쌍으로 생성해서 각 경로로 동시에 흩어지도록 했다. 양쪽 경로로 균일하게 보내지는 액체방울들에는 주기운동이 나타나지 않았다. 액체방울 생성장치를 바꿔 원래대로 하나씩 액체방울을 생성하자 수 분 뒤에 다시 주기운동이 나타났다. 이전의 네트워크 환경과 상관없이 자발적으로 주기운동이 생긴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번 실험은 미세유체 시스템을 이용해 모세혈관 주기운동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데 의의가 있다. 모세혈관 주기운동은 덴마크 의사 아우구스트 크로그가 발견해 1920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으나 그 뒤로 100년 동안 정확한 원리는 밝혀지지 않았다. 실험에 쓰인 네트워크 속 액체방울과 마찬가지로 지름은 6~7μm인 모세혈관에는 지름 6μm 적혈구가 관에 꼭 맞게 이동한다. 미세유체 네트워크 전체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주기운동이 모세혈관 주기운동을 만들어낸다고 추정하는 이유다.
제1저자이자 교신저자인 올게르 시불스키 연구위원은 “미세유체 네트워크는 모세혈관, 잎맥 등 생명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여기에서 발생하는 주기운동을 이해하는 것은 모세혈관을 물리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연구를 토대로 생명, 화학공학에 쓰이는 다방면의 미세유체 시스템 설계를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이번 연구의 의의를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피직스(Nature Physics)에 지난 23일 0시(한국 시각)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