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회사를 다니며 막연히 ‘사업’에 대한 꿈을 키워온 박 부회장은 짬을 내 동대문 시장에서 의류를 떼다가 주변에 팔아 완판시키는 등 나름 수완을 보였다. 교사였던 남편을 소파 공장에 취직시키면서 훗날을 기약하기도 했다. 1986년 창업한 ‘재경가구’는 남편이름에서 ‘재’ 본인의 이름에서 ‘경’을 떼 만든 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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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가구회사의 납품업체였던 재경가구는 외환위기를 맞아 원청기업이 도산을 하면서 위기에 처했다. 그 때 박 부회장은 “우리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업계 최초로 이탈리아에 가구 연구소를 만들었다.
이탈리아 곳곳을 방문하며 자체 브랜드 구상을 하던 박 부회장에 한 회사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가구 공장에서 나는 특유의 접착제 냄새가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박 부회장은 3배나 비싸지만 송진으로 만든 친환경 접착제를 바로 도입했다. 가죽도 자사만의 원료를 활용해 자코모만의 가죽을 공수했다. 이렇게 소파에 필요한 자재라면 작은 것 하나까지도 최고급을 고집했다.
박 부회장은 “자코모의 ‘자’는 재경가구의 JA에서 따왔고, ‘코’는 코리아, ‘모’는 이탈리어로 가구란 뜻의 모빌리에서 차용했다”고 말했다.
박 부회장이 꼽은 자코모의 성공은 ‘인재경영’으로 압축된다. 자코모는 주 5일 근무제 정착이 한국 사회보다 20년 빨랐다. 그는 “라디오에서 뉴스를 듣는데 격주로 주 5일제를 도입할 수 있다는 내용이 나왔다”며 “주간 생산량만 맞추면 주 5일제가 가능하겠다고 했더니 그때부터 이직이 전혀 없었다. 타카(고정용 핀을 박는 도구)박는 소리도 두 배로 빨라졌다”고 전했다.
지난 2021년에는 기능공 육성을 위해 소파 아카데미도 설립했다. 환갑이 넘는 기능직들만으로는 100년 기업을 만들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박 부회장은 “가업승계를 통해 100년 기업을 만들고 싶다”며 “소파 아카데미에서 5기생까지 나온 기능공들이 현장에서 잘해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6공장까지 늘린 자코모 각 공장에는 5~6명의 기능공이 자코모의 품질을 지키고 있다.
박 부회장 스스로도 디자인의 중요성을 깨닫고 1999년 늦은 나이에 대학에서 실내디자인을 전공했다. 이탈리아에 디자인연구소를 설립한 것도 그 연장선이다. 자코모는 현재 350가지의 소파 디자인을 확보한 회사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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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부회장은 “일본에 300여개 매장을 가진 프랑스베드에서 먼저 수출을 제의했다”며 “내년에 일본에 30개까지 매장을 늘려 궁극적으로는 수출 비중을 70%까지 높이는 글로벌 회사로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