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김진석기자] 지난 주말 모 방송사의 교양프로그램에선 추사 김정희 선생의 전시회를 소개하는 코너가 있었다. 영남대에서 자리를 옮긴 유흥준 명지대 교수의 설명이 곁들여 졌다. <나의 문화유적답사기>로도 유명한 유 교수는 최근 추사 김정희 생애와 예술의 세계를 자세하게 담은 <완당평전>을 출간한 바 있다.
그런데 왜 느닷없이 김정희인가. 이날 방송을 통해, 또 유 교수가 쓴 글에서 몇 가지 단상을 느꼈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세상에 김정희를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그렇다고 김정희를 아는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추사의 예술 세계는 금석학을 비롯해 불교, 고증학, 경학, 글씨 등 그 분야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그 학문이 깊기 때문이라는 게 유 교수의 설명이다. 다시 말해 "추사 김정희"란 이름은 알아도 그의 세계는 모른다는 것이다.
"주식을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그렇다고 주식을 아는 사람도 없다." 이렇게 김정희와 주식을 대체해도 말이 된다. 주식시장과 김정희선생을 비교한다는 게 온당치 않지만, 와 닿고 있는 느낌은 비슷하지 않은가.
주식시장도 국내외 정치 경제상황은 물론 사회 문화 심리적인 모든 요인들이 어우러져 시세를 형성하는 곳이다. 그 만큼 변화무쌍한 곳이 주식시장이다. 단순하고 단편적인 접근으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누군가는 이런 말도 했다. "주식시장을 꼭지점 위에 서서 360도 사방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고수라 불리는 사람들도 8부 또는 9부 능선에 위치해 있을 뿐"이라고. 부연하면 그 어떤 고수도 50% 미만밖에 이해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8부 능선과 9부 능선의 차이는 멀리 볼 수 있는 차이는 있어도 후방을 볼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뒤에서 날아오는 돌발악재는 예측난망이다.
지난해 10월 이후 6개월 연속 오름세를 이어가던 서울증시는 4월의 첫날 비교적 큰 폭으로 떨어졌다. 이날 급락의 직접적인 원인은 프로그램 매도세가 대거 쏟아지고 기관이 팔자에 치중한 때문이지만 나라 안팎으로도 악재요인이 많았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의 유혈충돌로 인해 전운이 감도는 중동사태와 이로 인한 국제 유가의 오름세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물론 벤처비리로 잇따르고 있는 대주주 구속 등 이런저런 악재들도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
특히 파생상품시장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면서 시장대응도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추사는 어떤 편지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평생 벼루 10개의 밑창을 냈고, 붓 1천 자루를 몽당 붓으로 만들었다." 이 말은 결국 추사의 예술세계가 타고난 천성보다 부단한 노력의 결실이었음을 반증하고 있는 셈이다.
여의도 증권가에도 밤늦도록 연구에 몰두하는 애널리스트들이 적지 않다. 과거에 비해 다양해진 분석의 틀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상당수 개인투자자들도 전문가 수준의 실력 갖추고 있다는 게 증권업계 종사자들의 귀뜸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투자자들이 더 많다는 사실도 부인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물론 최근 증시를 둘러싸고 있는 풍부한 유동성과 경기회복 기대감은 추가상승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에 충분하다. 주식투자는 흐름을 잘 타는 게 투자수익을 올릴 확률도 높여준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대세상승이라는 주변의 말을 믿고 요행투자에 나서고 있는 것은 아닌지 투자자 스스로 자문자답이 필요하지 않을까. 모두가 좋다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운칠기삼의 매매행태는 위함하다는 생각이다. 참담한 결과를 맛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의 문은 향상 열려 있다. 다만 앞문과 뒷문, 옆문을 구분할 수 없는 미로라는 사실은 유념해 볼 일이다. 된서리를 맞은 4월의 첫날, 마음을 추스르며 추사를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