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WTO "스테이블코인 결제·비용 강점있지만, 무역금융 대체 못해"

이 기사 AI가 핵심만 딱!
애니메이션 이미지
이정훈 기자I 2026.09.15 08:55:12

Google 검색에서 이데일리 기사를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WTO 차원서 첫 스테이블코인 무역 활용 가능성 진단
스테이블코인 결제 성장 주목 "국경간 거래에 특히 강점"
"단 대금 옮길뿐 신용·운전자본·보증·보험·위험경감 못해"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스테이블코인이 국제무역에서 국경간 결제 속도와 비용 문제를 일부 해결할 수 있겠지만, 신용장과 보증 등으로 대표되는 무역금융 자체를 대체할 순 없을 것이라고 세계무역기구(WTO)가 전망했다. WTO 차원에서 스테이블코인의 무역 활용 가능성을 진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WTO
WTO는 14일(현지시간) 발간한 ‘스테이블코인과 세계무역(Stablecoins and world trade)’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스테이블코인의 무역 관련성은 가치를 빠르고 연속적으로 국경 너머로 이전하는 능력에 있을 뿐, 기존 은행 시스템이나 무역금융 상품을 대체하는 데 있지 않다”고 못박았다. 이 보고서는 WTO 서비스무역투자국과 경제조사통계국이 공동으로 작성했다.

WTO는 준비자산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 유통 규모는 2020년 약 240억달러에서 2025년 2700억달러 이상으로 11배 넘게 불어났다며 스테이블코인시장 성장이 가파르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 숫자를 곧바로 결제로 읽어서는 안 된다고도 지적했다. 연간 35조달러로 집계되는 거래량 대부분은 트레이딩과 내부 자금 이동, 자동화된 온체인 활동이어서 공급업체 대금 지급이나 송금 같은 실제 최종사용자 결제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 순수 결제로 분류되는 금액은 연 3900억달러 수준으로, 글로벌 결제량의 0.02%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보고서는 결제에 쓰인 스테이블코인 거래 증가 속도는 눈에 띈다며 “3900억달러라는 금액은 2024년의 두 배가 넘는 규모이며 특히 기업간(B2B) 결제가 2260억달러로 전체 스테이블코인 결제액의 60%를 차지했는데, 지난해 증가율이 733%에 달했다”고 했다.

보고서는 국경간 결제에서의 강점은 수치로 확인된다고 했다. 실제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의 국경간 사용액은 2020년 초 140억달러에서 2024년 2분기 4060억달러로 35배 가량 늘었다. 비용 절감 사례도 제시했지만 “비용 우위가 보편적이지는 않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보고서는 결제와 무역금융의 차이를 지적하며 “스테이블코인은 대금을 옮길 뿐 신용이나 운전자본, 보증, 보험, 위험 경감 기능을 제공하지 않는 만큼 현재 무역에서 쓰이는 신용장, 추심, 무역대출, 공급망금융을 대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무역금융 시장은 규모부터 다르다. BIS 추산으로 2011년 은행 중개 무역금융은 6조5000억~8조달러, 신용보험·팩토링 등 비은행 부문이 2조5000억~3조달러를 더해 총 9조~11조달러 규모였다. 반면 시범사업을 제외하면 스테이블코인의 무역금융 활용은 사실상 전무하다는 게 보고서 평가다.

기존 무역금융이 서류 중심이라 비효율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국제상업회의소(ICC)에 따르면 신용장에 제출된 서류의 65~80%가 불일치를 이유로 1차 제시에서 거절된다. 그럼에도 이 체계는 소유권과 담보, 청구권을 단계별로 확정해주는 법적 확실성을 제공하는데,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는 아직 이를 복제하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다만 프리랜서 대금, 소프트웨어 구독료, 플랫폼 정산처럼 디지털 서비스 거래는 담보가 없고 결제 효율이 핵심이라 스테이블코인의 이점이 곧바로 살아난다면서 개도국 서비스 수출 성장에 상대적으로 더 유의미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무역에서의 스테이블코인 확산의 최대 변수로는 규제 파편화가 꼽혔다. 금융안정위원회(FSB) 조사 대상 29개 관할권 가운데 스테이블코인 규제 체계를 완성한 곳은 5곳(21%)에 그쳤다. 10곳은 정비 중이고, 11곳(38%)은 아직 초기 단계다.

유럽연합(MiCA)과 홍콩 스테이블코인 조례, 일본 결제서비스법, 미국 지니어스(GENIUS)법 등은 준비자산·인가·상환 요건을 갖췄지만 세부 기준이 제각각이다. 한 관할권에서 완전히 적법한 스테이블코인이 다른 관할권에서는 규제 밖 토큰이나 증권, 심지어 금지 자산으로 분류될 수 있다. 아랍에미리트(UAE)는 본토 상업결제에 외화 스테이블코인 사용을 금지하고 있어, 상대방이 어떤 규제를 받든 현지 수입업체는 USDT나 USDC로 인보이스를 결제할 수 없다.

기술 표준 문제도 남아 있다. 상호운용성 표준 개발을 법으로 의무화한 것은 미국 지니어스법이 유일하며, 다른 나라들은 시범사업과 민관 협력에 의존하고 있다. 국제 금융메시지 표준인 ISO 20022에도 크로스체인 상호운용성 규정은 없다.

WTO는 개도국을 별도로 다뤘다. 코레스뱅킹 관계는 2011~2022년 사이 약 30% 줄었고, 남태평양(-62.6%)과 카리브(-52.1%), 남미(-50.5%)의 감소폭이 컸다. 소도서개발국은 코레스 관계의 41%를 잃었다. 그만큼 대체 결제 경로에 대한 수요가 크다는 얘기다.

반대급부도 분명하다. 스테이블코인 대부분이 달러 표시인 만큼 통화대체, 이른바 ‘달러라이제이션’이 심화될 수 있다. 통화정책 전달력이 약해지고 해외 민간 발행사에 대한 의존이 커진다는 우려다. 감독 역량과 디지털 인프라, 소비자 보호, 자금세탁방지(AML) 이행 수준이 낮은 곳일수록 위험이 증폭된다.

이에 보고서는 “스테이블코인이 기존 국경간 결제 인프라의 유용한 보완재가 될 수는 있지만, 그 자체로 국제무역을 바꿔놓을 가능성은 낮다”고 결론지었다. 보고서의 서문에서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WTO 사무총장도 “스테이블코인의 잠재력이 기술적 역량뿐 아니라 적절한 거버넌스 체계와 공적 신뢰의 존재 여부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 AI가 핵심만 딱!
애니메이션 이미지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