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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싱크탱크인 전쟁연구소는 전날 공개한 보고서에서 “러시아가 당장은 추가 점령지 확보가 힘들다고 판단하고 전쟁 장기화에 대비하는 전략으로 전환하고 있다”며 “러시아는 자국 시민권 또는 고액 보수를 내걸어 중앙아시아 국가에서 이민자와 지원병을 적극 모집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군의 강력한 저항으로 일진일퇴 대치 상황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러시아가 병력 보충 및 점령지 병합으로 전략을 선회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앞서 백악관도 지난 19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의 추가 병합을 시도할 것이라는 충분한 증거를 확보했다”며 병합 가능성이 있는 지역으로 동부 돈바스(도네츠크·루한스크주)와 남부 헤르손, 자포리자 등을 꼽았다.
병합 시도는 2014년 크림반도를 흡수한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러시아 주민들을 이주시켜 정착을 도운 뒤 병합 찬반 여부를 묻는 ‘가짜’ 주민투표를 실시하는 방식이다.
전쟁연구소는 “러시아는 현재 9월까지 도네츠크주에서 현지 주민들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러시아 지방선거와 연계해 오는 9월 11일 전후에 도네츠크주에서 병합 찬반 주민투표가 진행될 것으로 내다봤다.
러시아는 점령지에 대한 실효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모든 점령지에서 우크라이나 미디어와 인터넷·휴대전화 통신 등을 가장 먼저 차단하고 ‘탈(脫)나치화’ 선전 방송을 연일 내보내고 있다. 또한 도로 표지판 등을 러시아 표지판으로 교체하고, 해당지역 주민들에게 러시아 여권을 발급토록 종용하고 있다. 신생아 출산시 러시아 법에 따라 신분을 등록하면 복지 수당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외에도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17일 러시아가 추바시 공화국에서 기존의 5~6배에 달하는 월급을 제시하며 루한스크·도네츠크, 자포리자, 헤르손 등지의 학교에서 일할 교사를 채용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러한 방식은 러시아가 다른 국가를 넘볼 때 펼치는 전형적인 전략이다. 러시아는 과거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들이나 라트비아·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을 상대로도 유사한 전략을 썼다. 많은 러시아 노동자들을 이들 국가에 파견해 정착·동화시킨 뒤 모든 러시아어 사용자를 보호하겠다는 명목을 내세우며 군사적 행동 근거를 마련했다.
우크라이나는 빼앗긴 영토를 되찾을 때까지 전쟁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최근엔 병합을 저지하기 위해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과 러시아 남서부 크라스노다르 지역을 잇는 크림대교를 파괴해 보급 차단을 시도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전날 강한 불만을 표하면서도 두 지역을 오가는 정기 페리 선박을 취항했다며 다소 느긋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크림반도 사례에 비춰보면 병합 후엔 우크라이나가 달리 손쓸 방법이 없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일부 전문가 및 외신들은 점령지 병합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 전략이라며, 러시아가 최근 특정 지역만 집중 공격하고 있는 것은 병합에 집중하기 위해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한 전략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