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내정자는 이날 오전 서울 통의동 금융감독원연수원에 마련된 사무실로 출근하는 길에 기자들과 만나 “엄동설한에 작은 화로라도 돼볼까 하는 심정이다. 어지러운 국정에 어떤 형태로든 기여하고 싶다”며 “찬바람이 세게 불 것을 모르고 나온 것도 아니다. 찬바람이 불기 때문에 나라도 나와야겠다고 해서 나온 것이다. 찬바람이 더 세게 부는데 어떻게 내 스스로 거둬들일 수 있겠느냐”고 했다.
야권이 자진사퇴를 압박하고 지난 주말 30여만명의 국민들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분노해 촛불을 들고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집회를 갖는 등 더 어려워진 정국에서, 김 내정자 자신이 주도성을 발휘해 극복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청와대는 김 내정자 카드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촉발된 난국을 돌파하겠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현행 헌법상의 각료제청권과 각료해임 건의권을 보장한 만큼, 김 내정자가 책임총리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현행법에서 수행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막강한 권한을 김 내정자에게 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야권과 여권 비박계는 대통령의 2선 후퇴가 전제되지 않은 김 내정자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확고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지난 4일 대국민담화에서 국정주도 의지를 밝히면서 김 내정자 권한에 대해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볼 때, 대통령이 권한을 내려놓겠다는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지명한 김 내정자를 인정하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후에도 박 대통령이 국정의 중심에 서는 상황이 연출돼 국민들의 엄청난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결국 현 난국을 누가 수습하느냐는 싸움이다.
박 대통령은 아직도 김 내정자를 앞세워 자신이 수습하겠다는 생각이고, 야권과 여권 비박계는 국회가 주도하는 거국중립내각으로 민심을 수습해야 한다며 맞서 있다. 이 와중에 김 내정자는 “(어지러운 국정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진다”며 총리직 욕심을 내고 있다.
시간은 대통령 편이 아니다. 청와대는 오는 12일 예정된 촛불집회 전에 여야 영수회담을 통해 김 내정자 카드를 관철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야권은 김 내정자 사퇴나 지명 철회가 이뤄지지 않으면 영수회담에 응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김 내정자가 여야 영수회담서 새 총리 후보가 정해지면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혀 여야가 전격적으로 영수회담에 합의할 수도 있다. 김 내정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성능 좋고 큰 난로가 나오면 화로는 없어지는 것”이라며 “여·야·청이 합의를 봐서 좋은 총리 후보가 나오면 제 존재는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청와대는 영수회담이 열리면 김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 절차를 요청할 가능성이 크다. 김 내정자 입장에서는 영수회담을 이끌어내면서 마지막까지 총리직 수행에 대한 희망을 이어갈 수 있다. 그러나 김 내정자 희망대로 이뤄질 것 같지 않다. 야권은 영수회담이 열리면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등 새 총리 후보를 제시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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