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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이렇게 파티는 저물어 가는가.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매의 발톱’을 치켜들면서 금융시장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는 트레이드 마크처럼 여겨졌던 “인플레이션은 일시적(transitory)”이라는 말을 버리겠다고 처음 선언하며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의 변신을 천명했다.
시장은 거칠게 반응했다. 하필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공포가 점증하는 와중에 긴축 가속화 의지를 내보이자 투자 심리는 급격하게 악화했다. 앞으로 돈 풀기 지원 사격이 사라지는 것이어서 약세 압력은 더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파월 “테이퍼링 조기 종료 고려해야”
파월 의장은 30일(현지시간) 상원 은행위원회에 출석해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는 단어를 버리고 연준이 의미하는 점을 명확하게 설명하기 좋은 시기”라고 말했다.
연준은 그동안 인플레이션에 대해 ‘일시적’이라는 단어를 반복하면서, 이를 근거로 초완화적인 정책을 펼쳐 왔다. 1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통화정책 성명까지 시장의 예상을 깨고 이 단어를 썼다. 이를 언급하지 않겠다고 하는 건 정책 방향을 긴축 쪽으로 선회하겠다는 명확한 신호다. 파월 의장은 “우리는 높은 인플레이션이 고착화하지 않도록 모든 수단을 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 연장선 상에서 테이퍼링(채권 매입 축소) 속도를 더 높일 것임을 시사했다. 파월 의장은 “11월 FOMC에서 발표한 테이퍼링을 몇 달 앞당겨 마무리하는 걸 고려하는 게 적절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연준은 11~12월에 한해 양적완화(QE) 규모를 월 1200억달러에서 매달 150억달러씩 줄이기로 했다. 그의 언급은 내년 이후 월 150억달러보다 더 많이 매입량을 축소하겠다는 뜻이다. 씨티그룹은 월 300억달러로 점쳤다. 씨티그룹의 예상대로라면 내년 3월이면 테이퍼링이 끝나는 셈이다. 이는 곧 기준금리 인상이 앞당겨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파월 의장은 “12월 FOMC 정례회의에서 이를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월가 한 금융사 관계자는 “파월 의장의 발언을 듣고 깜짝 놀랐다”며 “예상보다 훨씬 매파적이었다”고 전했다.
그의 변신은 자칫 시기를 놓치면 물가 폭등세가 손 쓸 수 없이 심화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현재 1년 기대인플레이션율 중간값은 5.7%다. 연준 목표치(2.0%)의 세 배에 달한다.
이뿐만 아니다. 시중 유동성 관리의 핵심인 은행 규제 역시 매파로 기우는 분위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소식통을 인용해 “조 바이든 대통령이 리처드 코드레이를 차기 연준 은행감독 부의장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코드레이는 2012~2017년 금융소비자보호국(CFPB) 초대 국장을 지냈다. CFPB 재직 당시 그는 은행권을 대상으로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심사 기준을 강화했고, 신용카드 요율과 수수료에 대한 더 많은 자료 공개를 요구했다. 은행권 규제에 완화적이었던 랜달 퀼스 현 부의장과는 결이 다른 인사다.
이 때문에 차기 부의장으로 지명된 라엘 브레이너드 현 연준 이사와 함께 은행권 대출 창구를 조일 수 있다는 전망이 많다.
◇돈 풀기 사라진 시장, 약세 압력 커질듯
문제는 연준이 긴축을 천명한 시기다. 하필 오미크론 변이가 세계를 덮치고 있을 때여서, 이날 글로벌 금융시장은 격렬하게 반응했다.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미국 뉴욕 증시 3대 지수는 모두 2% 가까이 내렸고, 월가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 변동성 지수(VIX)는 18.42% 급등했다. 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66.18달러에 마감하며 3개월여 만의 최저치까지 떨어졌다.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의 증시 역시 약세였다.
월가에서는 추후 약세장으로 꺾이는 변곡점을 맞았다는 진단이 다수다. 파월 의장 입장에서는 정책 실기론이 비등한 와중에 빠른 긴축 외에는 물가 폭등에 대응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다시피 해 온 연준의 통화 지원이 끝날 경우 강세장의 동력은 사라진다. 오랜 격언대로 ‘파티’가 한창인 시장에서 연준이 ‘펀치볼’을 치운 셈이다.
일부에서는 오미크론 변이 공포 탓에 가파른 긴축이 경기 침체를 부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날 뉴욕채권시장에서 그 조짐이 나타났다.
이날 연준의 긴축 시사에 미국 2년물 국채금리는 0.06%포인트 상승했는데, 경기 침체 예상에 10년물 국채금리는 반대로 0.08%포인트 떨어졌다. 채권 만기별 수익률을 이어놓은 채권수익률곡선의 평탄화(커브 플래트닝)가 뚜렷했다. 장기금리와 단기금리의 차이가 작아진다는 건 미래 경기 침체를 전망하는 투자자들이 많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또 다른 월가 인사는 “통화정책 정상화가 이미 늦었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며 “오미크론 변이 충격이 커지면 빠른 돈줄 조이기가 경기 반등을 저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