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방영된 드라마 ‘VIP’가 그려낸 ‘그들이 사는 세상’이다. 극 중 주요 인물은 모두 ‘백화점 상위 1%의 고객을 관리하는’ VIP전담팀에서 일한다. 최근 한 유명 백화점 VIP라운지에서 일어난 ‘맨발에 쌓아올린 마카롱’ 해프닝이 세간에 주목받는 이유는 현실과 드라마가 주는 괴리 때문이다. 극진한 대접을 받기는커녕 ‘발밑의 존재’로 전락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백화점 VIP 회원제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을 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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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 등급은 5년 전만 해도 ‘많아야’ 5단계였으나 VIP 고객을 유치하려는 경쟁에 불이 붙으면서 현재는 ‘적어도’ 5단계로 나뉘는 실정이다.
신세계는 트리니티·다이아몬드·플래티넘·골드·블랙·레드 등 6개 등급으로 구분한다. 우수고객을 MVG(Most Valuable Guest)로도 표현하는 롯데는 에비뉴엘·레니스·MVG프레스티지·MVG크라운·MVG에이스·VIP+·VIP 등 7가지나 된다. 현대는 쟈스민블랙·쟈스민블루·쟈스민·세이지·그린 순이다. 갤러리아는 PSR블랙·PSR화이트·파크제이드블랙·파크제이드화이트·파크제이드블루·제이드 등이다.
보다 많은 고객을 VIP로 유치하기 위해 등급을 세분화하고 하위 등급은 연간 구매금액 기준을 완화했다. ‘특별대우’를 받는 VIP 고객이 일단 되고 나면 등급을 유지하거나 올리기 위해 구매욕이 더 오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VIP 중에는 수백만원 이상 연간 구매금액을 충족만 해도 가질 수 있는 등급도 있으나 VIP의 상징인 VIP라운지에 입성하려면 최소 수천만원 이상 구매조건을 달성해야 한다.
특히 드라마 VIP에서 그려지듯 VVIP 고객을 뺏고 뺏기는 쟁탈전이 일어날 수 있는 구조이므로 일부 백화점은 최상위 등급의 경우 선정 기준을 비밀에 부치기도 한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신비감을 주기 위한 목적도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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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지만 전용 주차장·라운지 이용(등급별로 무료 이용가능 시간 3시간~종일), 발레파킹(대리주차) 서비스 등에 한번 맛을 들이면 빠져나올 수 없다”는 VIP 경험담이 줄을 잇는 이유다. 드라마로 연출된 ‘선을 넘는’ 특혜는 흔치 않다. 또 다른 백화점 관계자는 “VIP 관련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부서가 있는 건 사실이나 무리한 고객의 요구를 들어주진 않는다”며 “드라마는 다소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코로나19로 달라진 환경 속에서 ‘큰손’에 해당하는 VIP들은 ‘갈 곳을 잃은 신세가 됐다’며 볼멘소리다. 보복소비에 앞장서며 여전한 구매력을 과시했지만, 예년과 같이 제대로 된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익명을 요구한 백화점 직원은 “수도권 주요 지점들은 VIP라운지가 사실상 전면폐쇄 상태”라며 “이 같은 조치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런 와중에 제한적으로 테이크아웃 서비스를 제공하던 광교에 있는 한 백화점 VIP라운지에서 불미스러운 사고까지 터졌으니 불신이 커지는 것이다. 두 명의 직원이 VIP 고객에게 나눠 주는 마카롱을 발등 위에 쌓는 장난을 치며 이를 자신들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생중계한 일이다. 뒤늦게 영상을 접한 해당 백화점은 VIP라운지 운영을 중단시키고 재정비에 나섰다.
백화점 업계는 2030세대 VIP모시기로 신뢰 위기를 타개하려 몸부림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다음 달부터 30대 이하 고객 전용 VIP 멤버십 프로그램 ‘클럽 YP’를 운영할 예정이다. 다른 백화점들도 VIP 진입 문턱을 낮추거나 특화 회원제 도입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