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인근에서 최종현학술원이 개최한 ‘2023 트랜스 퍼시픽 다이얼로그’(TPD·Trans-Pacific Dialogue)에서 자신의 ‘한일 경제협력체’ 구상을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앞서 최 회장은 지난달 30일 일본 도쿄대에서 열린 ‘도쿄포럼 2023’에서도 한일 경제협력체 구상을 언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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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회장은 ‘한일 관계의 새 시대, 그리고 한미일 3자 협력’을 주제로 열린 첫 세션에서 “한국과 일본은 그동안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 많은 혜택을 누려왔으나 지금은 그 혜택이 사라지고 있고 큰 시장이었던 중국은 이제 강력한 경쟁자로 바뀌었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의 협력이야말로 이를 타개할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이어 “한국과 일본은 고령화 문제와 인구 감소, 낮은 경제성장률과 같은 문제에 함께 직면해 있고 지금의 경제적 위상을 더는 유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이를 해결할 방법은 EU와 같은 경제협력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EU도 처음엔 프랑스와 독일이 철강·석탄 같은 산업에서의 경제 연합으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시장으로 성장했다”며 “한국과 일본도 에너지와 반도체 등의 분야에서 협력한다면 많은 시너지를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이 강력한 경제동맹을 맺어 큰 시장으로 성장한다면 주변국인 중국과 러시아도 동참할 기회를 만들게 돼 결국은 북한 문제 등 동북아 전체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도 전망했다.
최 회장은 이날 열린 갈라 디너에서도 한일 경제협력체의 효과를 역설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 양국은 전 세계에서 수입하는 액화천연가스(LNG) 비중이 30%가 넘을 만큼 많은 에너지를 수입하고 있다”며 “한일 양국은 LNG·석유 수출국을 상대로 가격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을 포함해 관광업·스타트업 플랫폼 등에서도 시너지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더 나아가 한일 경제협력체가 미국과 함께 협력한다면 한·미·일 3국의 경제공동체는 30조달러(3경9000여조원) 이상의 거대 경제권이 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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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회장이 참석한 TPD는 한·미·일 3국의 전·현직 고위 관료와 세계적 석학, 싱크탱크, 재계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동북아와 태평양 지역의 국제 현안을 논의하고 경제 안보 협력의 해법을 모색하는 집단지성 플랫폼으로 2021년 처음 개최된 이래 올해로 3회째를 맞았다.
올해는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이 증대됨에 따라 △한·미·일 3자 협력 △미·중 전략 경쟁과 대만 문제 △과학 혁신의 지정학적 영향과 글로벌 공급망의 미래 △북핵 위기 △지정학적 전환점: 우크라이나, 중동, 그리고 아시아 등의 주제로 다양한 논의가 이어졌다.
특히 지난해 TPD에선 한일 양국의 상호 협력과 양국 교류 활성화가 주요 의제였던 반면 올해는 한발 더 나아가 한·미·일 3자 간 협력 방안에 대한 논의로 확장됐다.
이번 행사엔 미국의 정관계 인사들도 대거 참여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첫날엔 척 헤이글 전 미국 국방장관, 타미 덕워스 상원의원(일리노이주), 빌 해거티 상원의원(테네시주), 토드 영 상원의원(인디애나주) 등이 참석했고 둘째 날엔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 스티븐 비건 전 미 국무부 부장관, 론 클레인 전 백악관 비서실장, 존 오소프 조지아주 상원의원 등이 참석했다.
일본에선 모리모토 사토시 전 일본 방위상, 후지사키 이치로 전 주미 일본대사, 스기야마 신스케 전 주미 일본대사,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교수 등이 참석했다. 한국에선 조현동 주미 한국대사, 김성환 전 외교부 장관, 박철희 국립외교원장 등이 자리했다.
최종현학술원 관계자는 “각국의 전·현직 고위 관료를 포함한 지도층들이 ‘한·미·일 3국의 집단지성 플랫폼’이라는 최태원 회장의 구상에 공감하고 TPD에 대거 참여한 것은 복잡해진 국제 정세와 공동 과제 해결을 위해선 상호 협력과 정책 공조가 절실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