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 위협에 '사재기'하는 美기업들

정다슬 기자I 2025.01.31 11:13:22

관세 부과하기 전 미리 물건 사다두자
美12월 무역적자 역대 최고치
기업 입장에서는 리스크 커져…하반기 소비도 불확실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에서 멕시코-캐나다에 내달 1일부터 관세 25%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사진=로이터)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위협을 대응하기 위해 기업들이 수입을 확대하고 있다. “관세는 좋은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달리 수입은 늘어나고 수출은 감소하며 지난해 미국의 12월 무역적자는 1220억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美기업, 관세 피하기 위해 사전 구매

10대, 20대를 위한 캐주얼 의류를 판매하는 팍선(PacSun)의 브리앤 올슨 최고경영자(CEO)는 3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비상계획의 일환으로 1분기에 판매할 상품을 평소보다 앞당겨 미리 수입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공급업체와 이 문제에 대해 협력하기 위해 일주일에 두 번 회의하는 ‘관세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슨 CEO는 “팍선은 공급업체와 벤더를 최대한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매우 적극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다”

팍선처럼 미국기업들은 관세 부과를 피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를 외국기업이 내는 비용처럼 묘사했지만, 관세 자체는 외국에서 상품을 수입하는 미국 기업이 내는 것이 때문이다. 미국 20피트 컨테이너 수입량은 11월과 12월에 급증해 2021년 이후 가장 활발한 수준을 기록했다.

상품 공급망 컨설팅 회사인 더 머큐리 그룹의 호세 세버린은 “탬파와 휴스턴의 트레이더들이 트럼프 대통령 취임 첫날 관세 부과를 예상하고 한국, 일본, 튀르키예에서 철강을 구매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대량의 철강이 창고와 항구에 쌓이며 병목현상을 초래하고 비용이 상승했다.

독일 화학회사 랑세스는 지난해 4분기 순이익이 20% 이상 웃돌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이는 미국 고객이 미리 상품을 구매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무역협회에 따르면, 이탈리아 생산업체들은 더 많은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를 미국으로 더 수출했다.

자동차 업계도 트럼프 관세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하고 있다. 자동차업계는 미국-멕시코-캐나다(USMCA) 협정을 통해 캐나다와 멕시코를 미국 시장 수출을 위한 자동차 생산기지로 많이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너럴모터스(GM)는 4분기 멕시코에서의 출하를 가속화했다.

폴 제이콥슨 GM 최고재무책임자(CFO)는 “관세가 부과되기 전 우리가 납품할 수 있는 모든 재고를 쌓아두는 것보다 훨씬 더 좋다”고 말했다.

멕시코에서 타코마 픽업 트럭을 생산하는 토요타와 관련해, 한 소식통은 토요타가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에 있는 공장으로 미국산 상품 생산기지를 옮기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관세에 따른 소매가격 상승 폭이 큰 장난감 업체는 26일까지 2024년 1월과 비교해 수입금액이 4배 이상 증가했다.

◇재고비용 증가·美하반기 소비 ‘우려’

모든 기업들이 이러한 선택을 하거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삭 라리안 MGA엔터테인먼트 CEO는 “장난감은 패션 사업이다. 항상 트랜드가 바뀌는데 우리는 관세를 예상하고 그렇게 많은 재고를 쌓아둘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의 와인수입업체 올드 브릿지 셀러스(OBC)의 롭 부오노 사장도 관세를 피하기 위해 추가 재고를 쌓아두는 것은 피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 1기인 2019년 샴페인에 대한 관세 위협이 제고되자 샴페인 재고를 엄청나게 쌓아뒀지만, 샴페인이 관세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엄청난 손해를 볼 뻔 했다. OBC는 코로나19로 공급 문제가 발생하자 초과재고를 정리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운이 좋았던 것이고 이번에도 같은 위험을 감수할 의향이 없다는 입장이다.

관세가 미국 경제 성장의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다. 막대한 재고는 재고비용을 늘리고 기업의 이익률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미국 소비대기업 타겟은 지난해 8~10월 재고회전율이 5.3배로 전 분기의 5.9배에서 하락했다.

미국 성장동력인 소비가 하반기로 갈수록 둔화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미국 상무부가 이날 발표한 지난해 10~12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연 2.3%로 지난 7~9월(3.1%)로 둔화했다. 다만 개인소비는 4.2% 증가로 3분기 연속 가속했는데 특히 전년동기 대비 12% 증가한 내구재 소비 덕분이 컸다. 대형 허리케인 피해에 따른 복구 수요로 자동차 판매 등이 늘어난 탓도 있지만, 레크레이션 용품 등도 16% 증가했다.

경제학자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기 앞서 관세를 회피하기 위한 사전 구매 수요가 늘어난 것이 소비 진작에 영향을 줬다고 보고 있다. 미국 조사기관 컨퍼런스 보드의 12월 조사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의 46%가 관세에 따른 생활비 상승을 경계하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판테온 매크로 이코노믹스는 “이 상승 효과는 올해 후반기 들어서는 급격하게 쇠퇴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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