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당국은 지난해 8월부터 전문가 및 금융회사와 협의해 내부통제 개선안을 마련해왔다. 최근 파생결합펀드(DLF), 라임·디스커버리·옵티머스 등 펀드 불완전판매가 대규모로 발생해 소비자피해가 발생하거나 은행 본점에서 대규모 횡령 사건이 장기간 방치되는 등 내부통제 실패사례가 빈번해지고 있어서다.
개선안에 따라 우선 금융회사 대표이사는 각 임원별로 내부통제 책임을 배분한 책임지도(responsibilities map, 책무구조도)를 작성해야 한다. 책임지도에는 금융회사의 주요 업무에 대한 최종책임자를 특정해 내부통제 책임을 하부로 위임할 수 없도록 했다.
책임지도 대상은 CEO, 최고리스크책임자(CRO), 소비자보호총괄책임자(CCO)등 대형은행 기준 20~30여명 수준으로 전망된다. 책임지도는 이사회 심의 및 의결을 거쳐 확정돼 금융당국에 제출된다. 당국 승인 사항은 아니나 감독당국은 필요시 시정요구를 할 수 있다.
책임지도에 기재된 임원은 자신의 책임범위 내에서 내부통제가 이행되도록 내부통제 기준의 적정성, 임직원 기준 준수여부 및 기준의 작동여부 등을 상시점검 하는 내부통제 관리의무를 이행하게 된다.
특히 대표이사는 내부통제 총괄 책임자로 규정돼 전사적 내부통제체계를 구축하고 각 임원의 통제활동을 감독하는 총괄 관리의무가 부과된다. 현재 지배구조법이 규정하고 있는 기존의 내부통제 기준 마련의무에 더해 관리의무가 추가된 것이다.
앞서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DLF 손실 사태에서 내부통제 부실 등으로 당국에서 중징계를 받았지만,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에 그친 현 지배구조법 공백을 틈타 ‘징계의 법적 근거가 없다’며 소송을 제기해 최종 승소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CEO가 책임지는 경우에 대해 “책임지도를 잘못 만든 경우, 조직적이고 반복적이며 광범위한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전사적으로 내부통제를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하는 경우 등”이라고 말했다.
책임지도 도입에 따라 금융회사 부담이 완화되는 측면도 있다. 평소에 상당한 주의를 다해 내부통제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임원은 금융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책임을 감경 또는 면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 책임지도의 책임 대상으로 규정됐다고 해서 사고가 터지면 제재를 받는 게 아니라는 의미다.
이는 영국, 싱가포르 등 우리보다 금융이 발달된 주요국에서 성공적으로 운영해왔던 규제방식이다. 이번 제도개선으로 우리나라 내부통제제도의 국제적 정합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개선안은 이사회의 내부통제 감시역할도 명확히 했다. 이사회 내부통제와 위험관리에 관한 심의·의결사항을 추가했고, 이사회 내 소위원회로 내부통제위원회를 신설하는 등 상법상 이사의 내부통제 감시의무를 구체화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제도개선의 핵심은 임원 제재에 있다기보다는 임원이 스스로 내부통제를 더욱 충실히 수행하도록 유도하는 데 있다”며 “업계 의견 수렴 과정을 지속해 속도감 있는 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다. 의원입법이나 정부입법 모두를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책임지도가 포함된 지배구조법 개정안은 공포후 1년 이후에 은행과 금융지주를 대상으로 먼저 시행된다. 공포후 1년 6개월이후에는 대형 증권사 및 보험사에 적용되고 이후에는 여전사, 저축은행 등으로 확대된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조직문화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핵심은 결국 최고경영진의 의지와 리더십”이라며 “이번 제도개선의 취지를 감안해 ‘정직한 영업’에 대한 최고경영진의 의지를 직원들이 공감하고 인식할 수 있도록 협회장님들과 최고경영진 분들의 협조를 부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