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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진짜 발레는 여기 가까이 내 삶 속에 있어.”
70세를 앞두고 발레에 도전한 심덕출. 그는 치매 때문에 언젠가 기억을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발레단장 문경국은 심덕출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자 은퇴한 무용수들이 있는 연습실로 그를 초대한다. 각자 나름의 사연으로 무용수의 삶은 그만뒀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춤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 심덕출의 표정에 감격이 어린다. “너무 아름다워요. 제 눈에는 다들 예술가처럼 보여요.”
지난 1일 개막한 서울예술단 신작 창작가무극 ‘나빌레라’ 2막의 한 장면이다. 심덕출 역을 맡은 배우 진선규(42)의 넘버가 끝나고 잠시 정적이 흐르자 객석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영락 없는 노인의 모습인 진선규가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으면서 손과 팔을 뻗어 올려 발레 동작을 할 때는 박수가 터져 나온다. 공연장은 이미 감동으로 뜨겁다.
‘나빌레라’는 뒤늦게 발레에 도전한 노인 심덕출과 발레의 재능은 뛰어나지만 목표 없이 방황하는 청년 이채록의 이야기다. 발레와 노인이라는 색다른 소재의 조합, 여기에 치매라는 신파적인 요소가 섞인 작품은 탄탄한 스토리라인을 바탕으로 휴식시간을 포함한 2시간 30분의 공연시간 동안 관객을 웃고 울린다.
발레에 도전하는 노인이라는 설정은 지나친 허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공연은 보는 동안에는 오히려 노인도 춤추게 만드는 예술의 힘을 돌아보게 된다. 심덕출은 자신이 치매에 걸린 사실을 알고 난 뒤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이루지 못한 꿈에 도전하고자 발레를 배우기로 마음을 먹는다. 문경국 발레단장은 “요즘은 취미 발레반도 많다”며 심덕출을 돌려보내려 하지만 심덕출의 마음은 확고하다. 제대로 발레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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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고 초라한 몸으로 낑낑대며 발을 들어 발레를 하는 심덕출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작품의 웃음 포인트이기도 하다. 그런데 극이 전개되면서 관객들은 어느 새 심덕출의 어설픈 발레 동작에 빠져든다. 전문 발레리노만큼은 아니어도 발레의 동작을 차근차근 따라서 하며 무대 위를 자유롭게 누비는 심덕출에게서 여느 예술가 못지않은 열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2막에서 은퇴 이후 생활예술로 발레를 이어가는 무용수들의 장면이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심덕출이 치매에도 발레로 웃음을 잃지 않듯 예술은 특별한 사람만 누리고 즐기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곁에서 삶을 조금이나마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다. 서재형 연출가는 “이 작품에서 발레는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는 발레의 몸짓”이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예술이 일상에 스며들어서 모두가 향유하고 공유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탄탄한 스토리라인은 원작의 힘이다. ‘나빌레라’는 ‘은밀하게 위대하게’로 잘 알려진 훈(HUN) 작가가 지민 작가와 함께 2016년 7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다음에 연재한 동명 웹툰이 원작이다. 훈 작가와 지민 작가는 유니버설발레단과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출신으로 현재 이원국발레단을 이끌고 있는 발레무용가 이원국의 자문을 바탕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작품에 등장하는 문경국발레단 또한 이원국발레단을 롤모델로 하고 있다.
오랜만에 무대에 선 ‘천만 배우’ 진선규의 열연도 작품을 빛낸다. 살짝 굽은 등, 힘없이 늘어뜨린 팔, 느린 발걸음은 영락없는 노인의 모습이다. 그런 노쇠한 몸으로 발레를 하는 모습이 때로는 경이롭게 다가온다. 또한 진선규는 공연 시간 대부분을 무대에 올라 대부분의 넘버를 소화한다. 고음까지 소화해내는 뛰어난 가창력은 아니지만 노인 캐릭터에 걸맞은 소탈한 노래 실력으로 작품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공연을 보고 나면 발레가 더욱 보고 싶어진다. 발레 대중화의 길이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음을 생각하게 만든다. 12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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