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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산업은 주조·단조·금형·용접·표면처리·열처리 등 제조업의 기초 공정을 담당하는 산업이다. 완제품 전면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자동차·조선·기계·전자 등 주요 제조업의 소재와 부품 품질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산업의 뿌리’로 불린다.
뿌리기업들이 변신에 나선 배경에는 전방산업의 구조 변화가 있다. 전기차 전환으로 엔진과 변속기 등 내연기관 부품의 중장기 수요 감소가 예상되는 가운데 에너지 다소비 업종인 주조·단조업은 전기료 상승과 탄소 규제에도 직면한 상황이다. 여기에 숙련인력 부족까지 겹치면서 자동차 부품을 대량 생산하는 기존 사업모델만으로는 지속적인 성장을 담보하기 어려워졌다는 판단이다.
반면 첨단산업에서는 뿌리기술을 필요로 하는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다. AI 반도체 투자 확대는 반도체 장비와 진공펌프 등에 들어가는 고정밀 주조 부품 수요로 이어지고 있다. 로봇·모빌리티 산업에서도 경량·고강도 소재와 정밀 부품이 필요하다. 원전·SMR과 해상풍력 등 에너지 인프라 투자가 확대되면서 고강도·고신뢰성이 요구되는 대형 단조·주조 부품 시장도 새로운 먹거리로 떠올랐다.
1947년 설립된 주조 전문기업 대동금속이 대표적이다. 자동차·농기계·건설기계용 주물 부품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대동금속은 최근 반도체와 발전기, 조선, 산업기계 등으로 수요처를 확대하고 있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진공펌프 제조에 필요한 주조 소재를 공급하며 반도체 장비 밸류체인에 진입했다.
사업구조 변화도 뚜렷하다. 대동금속에 따르면 자동차 부문이 전체 사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56.4%에서 지난해 43.6%로 낮아졌고 올해는 39.7%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기간 일반산업·반도체 부문 비중은 15.0%에서 지난해 20.4%, 올해 24.7%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자동차 이외 사업 비중은 올해 처음 6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 중심 주물업체에서 복수 산업에 소재·부품을 공급하는 기업으로 사업구조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대동금속은 기존 주조기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새로운 소재와 제품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대동그룹이 추진하는 농업 AX 플랫폼 및 AI 온실 사업과 연계해 스마트팜용 구조재를 개발하는 한편 한국재료연구원과는 로봇·모빌리티에 적용할 수 있는 초경량 합금 소재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대동금속은 이 같은 신규 사업에서 이르면 내년부터 매출이 발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단조업계도 에너지 산업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태웅은 대형 자유단조 기술을 기반으로 조선·플랜트·풍력·발전설비 등에 사용되는 단조품을 생산해온 기업으로, 해상풍력과 원전·SMR 등 에너지 분야를 새로운 성장시장으로 공략하고 있다.
금형을 기반으로 성장한 나라엠앤디는 전기차 배터리와 에너지저장장치(ESS)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자동차와 가전 부품용 금형 설계·제작 기술을 토대로 배터리팩 등 관련 부품 시장에 진출했다. 배터리 산업이 셀 제조를 넘어 모듈·팩·케이스·냉각·안전 부품 등으로 확대되면서 기존 금형·사출기업에도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다는 평가다.
정부도 뿌리기업의 사업 전환과 공정 고도화를 지원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뿌리산업 진흥 정책을 통해 인력 확보와 연구개발(R&D), 공정혁신, 디지털 전환 등을 지원하고 있으며 올해는 뿌리산업에 적합한 AI 공정 개발과 실증을 지원하는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움직임을 제조업 공급망 재편에 따른 뿌리산업의 체질 변화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뿌리기업의 경쟁력은 더 이상 저비용 양산에만 있지 않다”며 “기존 공정기술을 기반으로 반도체 장비와 로봇·모빌리티, 에너지 등 새로운 수요처를 확보하는 것이 향후 뿌리기업의 성장성을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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