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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선상원 기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6월말 대선 출마 선언 이후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주 120시간 근무나 민란, 후쿠시마 방사능 발언 등으로 자질 논란이 일면서 맞았던 것과는 다른 위기에 직면했다. 당시 윤 전 총장은 국민의힘 입당으로 지지율 하락세를 돌려세우며 돌파했다.
공정과 상식, 법치주의를 내세우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던 윤 전 총장이 지난해 4월 21대 총선을 앞두고 여권 정치인과 기자들에 대한 고발을 사주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자신의 브랜드인 공정과 상식이 뿌리채 흔들리는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윤 전 총장은 여권의 조작설 등을 제기하며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전날 윤 전 총장을 면담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7일 CBS 라디오에 나와 “본인은 ‘떳떳하다, 부끄러운 게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며 “윤 전 총장은 ‘(고발장) 양식 같은 경우도 검사가 쓴 것이 아닌 것 같다’ 정도 이야기를 하더라”라고 전했다.
윤 전 총장은 떳떳하다고 하지만, 검찰총장 시절 측근이었던 손준성 검사 등에 대한 검찰 조사에서 손 검사가 관여한 것으로 드러나면 정치적 타격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총장의 눈과 귀 역할을 하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었던 손 검사의 일탈행위에 대한 지휘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손 검사는 “자신이 고발장을 작성하거나 첨부 자료를 김 의원에게 전달한 적이 없다”고 관련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손 검사 개인 일탈행위로 드러나면 타격 크지 않아, 결국 여론이 좌우
기억이 안 난다고 했던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관련 사실을 인정했다. 손 검사로부터 고발장 등 관련 문건을 전달받은 것으로 거론되고 있는 김 의원은 이날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그때 손 검사로부터 연락이 왔고 전달한 것 같다”며 “(당시 당에) 그냥 전달한 것 같기는 하다”고 했다. 김 의원이 손 검사로부터 자료를 받아 전달했다고 인정하면서 검찰의 진상조사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김오수 검찰총장 지시로 진상조사에 착수한 대검 감찰부는 손 검사가 사용했던 컴퓨터들을 확보해 손 검사가 실제로 해당 고발장 작성 등에 관여했는지 조사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사실관계 확인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컴퓨터와 전산망에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다. 수사정보정책관실은 팀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손 검사 혼자 다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이번 의혹은 검찰조직의 명운이 걸린 일이다. 필요하다면 서울중앙지검이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검찰 조사 결과, 손 검사 개인의 과잉충성으로 마무리되면 윤 전 총장이 받을 타격은 크지 않을 것이다. 다만 고발장이 윤 전 총장과 가족의 명예를 훼손하고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내용이라 지속적인 의혹 제기는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윤 전 총장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면 정치적 타격은 말할 것도 없고 후보직 사퇴로 내몰릴 수도 있다.
윤 전 총장의 운명은 국민의힘 지지층, 보수층이 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진실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사실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사람들은 자기들이 갖고 있는 생각을 믿는다. 거짓말도 믿어주면 그대로 가는 것”이라며 “결국 여론이 좌우할 것이다. 지지율이 빠지지 않으면 돌파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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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전 총장 지지율 한달 새 5.9%포인트 하락, 홍준표 9.5%포인트 올라
문제는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이 하락세이고 대안으로 홍준표 의원이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수층이 윤 전 총장에 열광했던 이유는 정권교체 때문이다. 만약 홍 의원으로도 정권교체가 가능하다면 가족 리스크에 본인 리스크까지 불거진 윤 전 총장에 대한 지지를 거둘 것이다.
실제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TBS 의뢰로 지난 3~4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를 조사한 결과, 윤 전 총장은 이재명 경기도지사(28.0%)에 이어 26.4%로 2위를 달렸다. 그 다음으로 홍 의원 13.6%, 이낙연 전 대표 11.7%순이었다. 지난 7월말 국민의힘 입당 당시 조사에서 32.3%에 달했던 적합도가 한 달여만에 5.9%포인트 하락한 것이다. 반면 홍 의원은 4.1%에서 13.6%로 9.5%포인트 올랐다.
특히 20~30대 지지율이 각각 26.3%, 19.5%로 윤 전 총장을 3~11.2%포인트 앞섰다. 부산경남 지지율도 21.5%로 윤 전 총장의 21.4%를 근소하게 앞섰다. 7월말에는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이 41.2%로 홍 의원보다 35.8%포인트 높았다.
국민의힘 지지층 지지율도 68.1%에서 52.4%로 하락했다. 대신 홍 의원은 7.0%에서 23.9%로 세 배 넘게 늘어났다. 보수층 지지율도 마찬가지였다. 윤 전 총장은 48.5%에서 40.2%로 하락했고 홍 의원은 8.0%에서 22.4%로 올랐다. 결국 범보수권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는 윤 전 총장과 홍 의원이 각각 28.2%, 26.3%로 딱 붙었다. 이번 조사는 100% 무선전화 ARS 조사로 이뤄졌고 더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이 더 하락하면 고발 사주 의혹을 돌파할 수 있는 동력을 잃을 수도 있다. 향후 1주일이 중대 분수령으로 윤 전 총장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팩트가 나오면 윤 전 총장이 내세웠던 공정과 상식, 법치주의에 역풍이 몰아칠 것이고 지지율이 떨어질 것이다. 보수층이 윤 전 총장이 아닌 것 같다고 여기면 보수의 본류인 홍준표 의원에게 더 관심을 가질 것”이라며 “홍 의원도 안되겠다고 생각하면 유승민 전 의원에게 관심을 가질 수도 있다. 젊은층과 중도층에게 매력적인 카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