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마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최측근을 중국에 특사로 보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진영의 결집에 맞서 중·러간 협력은 오히려 공고해지는 것이다. 국제사회는 전쟁 피로감 탓에 평화회담 기대가 싹트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전쟁 장기화에 대비하고 있는 기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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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전쟁 300일만에 전격 방미
2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오후 미국 공군 제트기를 통해 워싱턴DC 인근 앤드루스 합동기지에 도착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로부터 침공 당한 뒤 전장인 우크라이나를 벗어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진지 300일 되는 날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도착 후 곧바로 조 바이든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마치 전투 복장을 연상케 하는 짙은 청록색 티와 바지를 입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환대했다.
그의 방미는 불과 3일 전에 확정됐을 정도로 극비리에 이뤄졌다. 전쟁 중 신변 위협이 컸던 탓이다. 그럼에도 그가 미국을 찾은 것은 무기 확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보좌관은 로이터통신에 “무기, 더 많은 무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이를 감안한듯 이날 패트리엇 미사일을 포함해 18억5000만달러 규모의 추가 군사 지원을 발표했다. 미국이 항공기 요격이 가능한 패트리엇 미사일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로써 바이든 정부가 지원한 무기 규모는 지금까지 219억달러에 달하게 됐다. 한국 돈으로 무려 28조원이 넘는다.
바이든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패트리엇 미사일은 우크라이나 방어의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번 (무기 지원) 패키지의 가장 강력한 요소는 패트리엇”이라며 “안전한 영공을 위한 매우 중요한 단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미국에 거듭 감사를 표했다. 현재 러시아를 상대로 선전하고 있는 만큼 무기 확보를 통해 전쟁의 주도권을 가져오겠다는 게 젤렌스키 대통령의 포석으로 읽힌다.
두 정상은 푸틴 대통령을 향해서는 강하게 비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은 이 잔인한 전쟁을 끝낼 의사가 전혀 없다”고 했고, 젤렌스키 대통령 “러시아는 우리와 유럽, 자유 세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어 미 의회를 찾아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은 자선이 아닌 세계 안보와 민주주의에 대한 투자”라며 초당적 지지를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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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측근 메드베데프, 시진핑 만나
러시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은 최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을 특사로 중국에 보냈고,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시진핑 국가주석과 면담을 했다. 시 주석은 “두 나라가 새로운 시대로 가면서 전략적인 협력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은 각자의 국정에 기초한 장기적인 전략적 선택”이라고 말했다.
두 인사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논의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크라이나가 미국을 찾을 때 러시아는 중국을 찾은 것이다. 푸틴 대통령 입장에서는 서방 진영에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으로 읽힌다.
상황이 이렇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평화협상은 난망해 보인다. 국제사회는 인플레이션 고공행진과 에너지 대란, 경기 침체 공포 탓에 1년 가까이 이어지는 전쟁을 끝내고 협상에 돌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지만, 정작 두 당사자는 전쟁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다는 관측이 많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이번 방미 중에도 서방 진영의 전쟁 피로감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관측이 더 많아 보인다.
무엇보다 두 나라간 이견 차가 워낙 크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향해 병력 철수와 전쟁 피해 배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는 철수는 있을 수 없는 일로 못 박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