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투자하겠다면서 '카지노' 롯데관광개발 지분 늘린 국민연금

조해영 기자I 2020.10.13 11:03:58

국민연금, 롯데관광개발 지분 10.75%로 확대
카지노 들어설 제주 복합리조트 사업 추진
기금운용원칙 명시한 '지속가능성' 배치 지적

카지노가 ESG 롯데관광 지분 확대하는 국민연금 속사연 [그래픽=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이데일리 조해영 기자] 지속가능성을 기금 운용원칙에 명시한 국민연금이 카지노가 들어설 리조트 사업을 추진하는 롯데관광개발(032350) 지분을 늘리면서 투자 기조와 배치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글로벌 연기금들이 담배·술·도박과 관련한 이른바 ‘죄악주’ 투자를 배제하는 것은 물론 환경오염을 고려해 석탄발전 관련 투자를 자제하는 것과도 대조적이다.

국민연금은 해당 종목이 상반기 벤치마크에 새롭게 편입된 만큼 무리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위탁뿐 아니라 자체 주식운용에서도 가치투자 원칙을 명확히 하고 이를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제주시 도심에 자리한 복합리조트 ‘드림타워’의 야경 모습. (사진=롯데관광개발 제공)
◇롯데관광개발·더블유게임즈 지분 10% 이상으로 확대

1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보유한 롯데관광개발 지분은 지난 6월 8.41%에서 지난달 29일 10.75% 수준까지 늘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10월 롯데관광개발 지분 5.29%(364만9824주)를 취득한 데 이어 지분을 늘리면서 2대 주주로 올라섰다.

롯데관광개발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여행 수요가 줄면서 올해 2분기 매출액이 5억원에 미치지 못해 거래 정지를 당하기도 했다. 다만 3분기 이후 국내여행 관련 영업 활성화와 4분기 오픈 예정인 제주 드림타워 복합리조트 영업으로 안정적인 매출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제주 드림타워 복합리조트에 외국인 전용 카지노가 들어설 계획이라는 사실이다. 롯데관광개발은 현재 서귀포 롯데호텔제주에서 운영하는 카지노를 드림타워로 확장·이전할 예정이다. 이 계획은 지난 8월 제주도 카지노산업 영향평가 심의위원회를 통과했다.

이 때문에 ESG 투자를 내세우고 있는 국민연금이 카지노 시설을 핵심 사업으로 내세우는 롯데관광개발의 지분을 늘린 것이 원칙과 어긋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민연금은 롯데관광개발 외에 소셜카지노게임 업체인 더블유게임즈(192080)의 지분도 지난 7월 9.19%에서 10.26%로 늘렸다.

국민연금의 롯데관광개발 지분은 지난해 10월 5.29%에서 지난달 10.75%까지 증가했다. (그래픽=이동훈 기자)
◇운용원칙에 ‘지속가능성’ 못 박고도 지분 늘려

국민연금은 기금 운용원칙으로 수익성·안정성·공공성·유동성·운용독립성과 함께 지속가능성을 명시하고 있다. 투자자산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당장 수익성만 따지는 게 아니라 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의 요소를 고려해 운용해야 한다는 이른바 ESG(Environment·Social·Governance) 투자 원칙이다.

ESG는 글로벌 연기금 사이에선 투자 기준의 하나로 정착한 지 오래다.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는 수년 전부터 KT&G(033780) 같은 담배 생산기업이나 무기 생산기업을 투자 제외 대상으로 지정했고, 네덜란드 연기금(APG)은 석탄 화력 투자를 줄이는 차원에서 지난 2017년 한전 지분 절반 이상을 매각한 데 이어 지난해 투자금 대부분을 회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국민연금기금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에 따르면 국민연금 역시 책임투자 위탁펀드에서 술·도박·담배 등 죄악주 관련 기업은 투자 대상에서 배제해 투자하고 있다. 다만 롯데관광개발 지분 확대에서 보듯이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직접 투자엔 죄악주 배제 등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국민연금은 롯데관광개발의 벤치마크 편입 시기를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민연금은 벤치마크로 코스피200을 사용하고 있는데 한국거래소가 지난 5월 롯데관광개발과 더블유게임즈를 벤치마크에 신규 편입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단순히 카지노 관련으로 보기보다 국민연금의 벤치마크와 해당 회사의 벤치마크 편입 시기를 같이 보는 것이 객관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속가능성을 운용원칙으로 내세우고 있는 만큼 자체 운용에서도 ESG 관련 구체적 기준을 명시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한국은 여타 선진국과 비교하면 책임투자의 역사가 짧다”며 “국민연금의 성격을 고려할 때 수익률뿐 아니라 구체적인 책임투자 지침을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투자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원칙. (자료=국민연금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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