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술관 '3650 스토리지-인터뷰' 전
감성빈·콰야 '회화' 임준호·이태강 '조각' 등
미술관 개관 뒤 10년간 기획전 출품했던
작가 48명 신작 200여점, '인터뷰'와 전시
신생아 배냇머리까지 한올씩 심어 완성한
샘징크의 극사실주의 조각 화룡점정으로
| 서울 종로구 부암동 서울미술관 기획전 ‘3650 스토리지-인터뷰’ 전경. 정면에 우뚝 세운 임준호의 ‘조각상 no.48’(2019) 뒤로 추종완의 ‘위대한 유산’(2021) 연작(왼쪽)과 조문기의 ‘독식가의 방’(2020) 등 회화작품 4점, 김태동의 ‘플래넷’(2017·2018) 연작 등이 걸렸다. 미술관 개관 10주년을 기념한 두 번째 전시다. 10년간 50여건의 ‘현대미술 기획전’에 나섰던 300여명의 작가 중 48명의 신작 200여점과 이들의 ‘인터뷰’를 정리한 48점을 함께 걸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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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누군가 다가와 묻는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은 없었느냐”고, “어떤 힘으로 지금껏 버텨왔느냐”고. 혹시 눈치챘으려나. 이 질문엔 진한 복선이 깔려 있다. 당신이 해온 일은 결코 쉽지 않았던 것이라고. 안타깝지만 앞으론 그렇지 않으리라 어떤 장담도 할 수 없다고. 과연 선뜻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질문과 복선이 뒤엉킨 기가 막힌 현실을 읽어냈다면 말이다. 그럼에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던 몇몇 대답을 먼저 보자.
“결승선이 보이지 않는 마라톤을 하는 기분이 들 때였다. 애써 말하지 않고 나를 오롯이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작업밖에 없더라”(강소선). “분노, 열등감, 성취감, 연민, 신앙, 에로스, 욕망, 시기, 질투, 동료, 술, 담배, 핫식스, 가족, 칭찬, 책, 음악 등을 에너지로 삼았던 것 같다”(감성빈). “아무리 오랜 시간 노력해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았을 때 절망했다. 그런데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림을 그리는 행위 속에서만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무나씨). “작가로 사는 것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것 같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가 또 작업이 잘되면 세상을 가진 듯하기도 하고. 그래서 관두고 싶다가도 또 계속하기를 오래 반복하고 있다”(엄익훈). “경제적인 이유로 매일 예술가의 삶에 회의를 느낀다. 하지만 그 고민은 늘 더욱 큰 창작욕으로 이어지더라. 예술은 곧 나의 삶이니까. 삶을 포기할 순 없다”(이태강). “언제나 포기하고 싶은 순간의 연속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나에게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고 삶의 이유라 당연하게 이어가게 된다”(콰야).
| 서울미술관 기획전 ‘3650 스토리지-인터뷰’ 전경. 미술관 개관 10주년을 기념한 두 번째 전시는 10년간 50여회 기획전에 나선 300여명의 작가 중 48명의 신작 200여점과 이들의 ‘인터뷰’를 정리한 48점을 함께 걸었다. 지난 여정을 압축한 주요 전시 포스터와 참여작가 이름들이 전시장 초입을 장식하고 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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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모두 작가다.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는. 그래, 맞다. 저 어려운 질문은 이들 작가들에게 했던 거다. 이름만 대면 작품이 연상될 이들의 ‘대답’이 그저 순간의 넋두리인 건 아니다. 미술관에 버젓이 전시작으로 걸려 있으니까. 도구와 기법은 다르지만 결국 이들이 살아가는 까닭이고 삶의 이유가 돼준 ‘작품’들과 기꺼이 나란히.
◇작가 300여명 중 절반이 팬데믹 거치며 작업 중단
서울 종로구 부암동 서울미술관이 특별한 기획전을 꾸렸다. ‘3650 스토리지-인터뷰’란 타이틀을 단 전시는, 미술관이 늘 해오던 방식에서 한 계단 올라섰다. 주목할 작가들의 작업을 내보이는 데서 나아가 그들의 ‘손과 생각, 마음’을 동시에 엿보게 한 건데. 전시에 참여한 48명 작가가 출품한 작품은 물론 ‘인터뷰’한 내용까지 함께 걸어낸 거다.
| 서울미술관 기획전 ‘3650 스토리지-인터뷰’ 전경. 48명 참여작가의 작품과 함께 ‘인터뷰’ 내용을 함께 전시하고 있다(사진=서울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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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이런 고안을 한 데는 계기가 있다. ‘10년 세월’이다. 2012년 흥선대원군 별장이던 석파정을 낀 바위산에 미술관이 들어선 이후 10년. 그 고락을 함께해온 작가들과 다시 한번 뭉쳐보자 했다는 거다. 10년간 미술관이 쌓은 50여건의 ‘현대미술 기획전’을 통해 작품을 걸거나 세웠던 작가들은 300여명. 수소문을 시작했다. 그런데 의외의 난관에 부딪혔단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작업을 중단한 작가들이 “절반에 이르더라”는 거다.
이번 전시에 이름을 올린 48명은 그 ‘절반의 작가’ 중 전시주제 등과 맞는 신작을 낼 수 있었던 작가들이다. 그러니 묻지 않을 수 있었겠나. ‘포기가 밀려든 순간을, 용케 버텨낸 힘을’ 말이다. 그렇게 국내작가 39명, 해외작가 9명이 회화·조각·사진·영상·설치·일러스트 등 200여점을 내놨고, 그외에 ‘인터뷰’란 타이틀을 가진 같은 이름 다른 내용의 작품 48점을 더 걸 수 있었다.
| 감성빈의 ‘표류’(2021·157×188㎝). “살아가며 조우하는 다양한 형태의 인간군상들을 평면·입체·설치 등으로 작업한다”는 작가는 캔버스 안 회화는 물론 캔버스 밖 액자프레임까지 조각하는 독특한 작품을 내놨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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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수로는 단연 회회작품이 앞선다. 섬세한 캔버스 묘사도 부족해 액자프레임까지 조각해버린 감성빈(‘가족’ 2022, ‘표류’ 2021 외), 흑인음악에서 받은 영감을 콜라주로 옮겨내는, 서양화를 전공한 가수 유나얼(‘깨지기 쉬운’ 2022 외), 한지에 먹만으로 도형에 갇힌 한 사람의 일상을 4.8m 8폭 병풍에 나열한 무나씨(‘각자의 도와 생’ 2021), 담백한 스토리를 담백한 인물에 얹어 힘 뺀 붓질로 덤덤하게 덧입혀 나간 콰야(‘추운 날’ 2021 외), 작가 자신을 소재로 정체성은 물론 슬픔을 정화하는 방법을 ‘종이에 수채’로 순하게 그려낸 이고은(‘란’ 2020 외), 가부장적 가족관이 충돌하는 상황을 ‘험악한 유머’로 묘사한 조문기(‘독식가의 방’ 2020 외) 등.
| 콰야의 ‘추운 날’(2021·117×91㎝·왼쪽)과 ‘어느 비 오는 날’(2020·145.5×112㎝). “일상의 다양한 순간에서 영향을 받아 일기를 쓰듯 작업한다”는 작가는 담백한 스토리를 담백한 인물에 얹어낸다. 전시작을 두곤 “형태를 단순하게 만들고 기술적인 표현을 줄여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조금 더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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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문기의 ‘추락하는 자식을 삼키는 남자’(2020·145.5×112㎝·왼쪽)와 ‘대부님 기계장치를 타고 내려오신다’(2020·112.3×162.2㎝). 작가는 “가부장적 가족관이 충돌하는 소재를 다룬 시리즈”라고 전시작을 소개했다. 자칫 ‘험악하게’ 보이는 장면을 두곤 “미디어를 통해 굴절된 인간 군상들을 바라보다가 현실의 모양과 비교해 관찰했던 기억을 조합이 아닐까” 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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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고은의 ‘란’ 연작(2020·51×61㎝, 51×61㎝,, 56×70㎝). 작가는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을 극복하는 과정을 겪고 “이젠 슬픔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담아 착수한 미완의 연작”이라며 “인물의 미묘한 표정과 눈빛을 재현하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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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시장에 우뚝 솟아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형체는 단연 조각작품이다. 송유정이 그려낸 탐험의 세계(‘안녕 나의 작은 친구들’ 2022 외), 엄익훈이 꾸며낸 빛과 환상의 조화(‘춤추는 소녀’ 2020 외), 이태강이 빚어낸 세상에 없는 인물(‘초인의 두상’ 2018), 임준호가 창조한 세상에 없을 동물상(‘조각상 no.48’ 2019) 등. 여기에 화룡점정은 호주 출신 샘징크의 극사실주의 조각이 찍었다. 피부조직은 물론 신생아의 배냇머리까지 한올 한올 심어, 사람의 외형 그대로를 옮겨낸 인물조각으로(‘베이비’ 2012, ‘여인과 아기’ 2010).
| 호주 출신 극사실주의 조각가 샘징크의 ‘베이비’(2012·18×36×36㎝·왼쪽)와 ‘여인과 아기’(145×40×40㎝). 실리콘과 레진 등을 사용해 마치 실물인 듯한 사람의 형상을 만들었다. ‘베이비’는 투명한 피부, 발바닥 주름은 물론 진짜 신생아의 배냇머리를 심어낸 머리카락까지 생생하다. 작가의 가족을 모델로 삼았다는 ‘여인과 아기’ 중 노인이 입은 옷은 “어머니가 손수 제작한 것”이라고 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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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미술관 기획전 ‘3650 스토리지-인터뷰’ 전경. 이태강의 회화작품 ‘비범한 풍경’ 연작(2022·117×91㎝·왼쪽)과 조각작품 ‘초인의 두상’(2018·80×70×90㎝)을 나란히 걸고 세웠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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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미술관 기획전 ‘3650 스토리지-인터뷰’ 전경. 조각작품과 그림자회화를 결합한 엄익훈의 ‘춤추는 소녀’(2020·53×23×52·왼쪽부터), ‘바이올린 켜는 소년’(2020·51×22×50㎝), ‘발레리나 되기’(2020·44×26×46㎝)가 나란히 놓였다. 뒤로 강소선의 회화 ‘밖에서 안으로, 안에서 밖으로’(2022·97×162.2㎝·오른쪽)와 작가의 ‘인터뷰’가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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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명 작가의 ‘손과 생각, 마음’으로 다시 10년 예약
서울미술관이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펼친 두 번째 전시다. 지난해 4월 개막해 7개월여간 진행한 첫 번째 기념전 ‘두려움일까 사랑일까’를 이었다. 한국 근현대거장 31명의 주요작품 200여점을 내보였던 첫 전시에는 10만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더랬다.
두 차례의 기념전이 말해주듯 서울미술관의 지난 10년 역시 두 갈래였다. 미술관을 세운 안병광 회장의 500여점의 컬렉션을 수시로 내보인 ‘소장품’ 전은 일단 예외로 하자. ‘러브 액추얼리’(2013), ‘모든 것이 헛되다’(2015) ‘연애의 온도’(2016·2021), ‘사랑의 묘약’(2017), ‘카페 소사이어티’(2017), ‘디어 마이 웨딩드레스’(2018), ‘보통의 거짓말’ (2019) 등, 동시대 현대미술가들의 기량과 고민을 한자리에 모았던 기획전이야말로 단연 미술관의 역사를 썼다고 할 테니까.
| 서울미술관 기획전 ‘3650 스토리지-인터뷰’ 전경. 무나씨의 ‘각자의 도와 생’(2021·135×480㎝·오른쪽)과 이이립의 ‘공진’ 연작(2019∼2022·130×97㎝)이 나란히 걸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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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말이다. 지난 시간을 떠올릴 장면을 요란하게 치장하지 않은 이번 기념전은 그중 ‘백미’라고 할까. 혹여 지난 10년간 서울미술관 기획전을 한번 이상 둘러봤다면 어느 지점에선가 저절로 발을 멈추게 돼 있으니. 48명 작가에게는 과거를 뛰어넘을 기회를 주고, 48명 작가에게서 빌린 ‘손과 생각, 마음’으로 미래를 예약한 자리가 됐으니.
아쉬움이 없진 않다. 작가 48명의 ‘인터뷰’를 단지 ‘출력한 종이 위 텍스트’로만 남겼다는 점이 말이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저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됐다면 그 깊이를 좀더 긴밀하게 더듬어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던 중 발견한 ‘인터뷰’ 한 조각이 지레 화들짝 놀라게 한다. “너무 많을 걸 욕심내면 몸이 힘들어집니다. 너무 조급하면 마음에 상처가 납니다. 우리 같이 욕심부리지 말고 조급해하지도 말고 천천히 작업합시다.” 후배 예술가를 토닥이는 황선태 작가의 다정한 조언일 뿐인데, 마치 관람객인 우리 어깨를 내어준 듯하달까. 전시는 4월 16일까지.
| 서울미술관 기획전 ‘3650 스토리지-인터뷰’ 전경. 스페인 다원예술가 하비에르 마틴의 평면작품 ‘달과 거짓 사이의 맹목’(2022·200×200×5.5㎝·오른쪽), 안준의 사진작품 ‘자화상’ 연작(2021·152.4×101.6㎝·왼쪽), 림배지희의 회화작품 ‘껍데기’(2021·130.3×193.9㎝·정면) 등이 한 공간에 걸렸다. 안쪽으로 정소윤의 설치작품 ‘안정으로 가는 길’(2021·가변설치)이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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