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판교에 위치한 한국바이오협회 본사에서 이승규 부회장을 만나 최근 한국 바이오업계가 놓인 위기에 대해 진단과 해법을 들어봤다. 신약개발사를 창업해 13년간 운영하다 2012년부터 국내 바이오산업 대표 단체인 한국바이오협회의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 부회장은 “10년 동안 지금처럼 바이오벤처 대표들의 절실하고 힘든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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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맥경화’ 장기화되면 3년 뒤 진짜 문제”
이 부회장은 최근 저녁마다 매일같이 경영상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바이오벤처 대표들의 전화를 받는다. 그는 “초기 개발단계의 차기 파이프라인 재정비 등 시급한 현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며 “지금 국내 바이오벤처들은 전례없는 상황에 절망적인 상태”라고 했다.
이 부회장은 “상황이 장기화되면 늦춰진 임상 일정이 앞으로 기술수출 진행과 규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개발 완료시점이 뒤로 밀려 특허유지기간이 짧아지면서다. 그는 “특허유지기간은 기술수출시 밸류 측정에 주요인이 되는데 개발기간이 길어지면 개발완료 후 사업가능기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빅파마들이 기술수출 규모를 줄이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주요 파이프라인만 남겨두고 나머지 개발을 중단하면 3년 뒤 진짜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신약개발사는 물질개발, 전임상, 임상 각 단계 파이프라인의 개발을 연속적으로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 때문에 3년 뒤에는 물질개발 단계 파이프라인만 남아 지속발전가능한 사업전개에 공백이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만 투자혹한기를 오히려 성장의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상장 일변도에서 벗어나 기업간 인수합병(M&A)이 활성화돼야 산업의 내실을 키워야 하는데 이 상황이 M&A가 업계에 자연스레 자리잡을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바이오 콘트롤타워 만들어 정책 고도화해야”
대신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성이 필요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스타트업의 시드머니였던 정부정책과제 지원비도 현저히 줄었다”며 “지금같이 어려울 때는 공공부문에서 R&D 비용을 지원해야 하는데 메가펀드에 대한 기대감도 산업계에서는 많이 사그라든 상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소벤처기업부의 내년 모태펀드 예산이 올해(5200억원) 예산의 60% 수준인 3135억원 규모로 책정되면서 벤처 비중이 높은 바이오업계는 고심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 1조원 규모 K-바이오 백신펀드도 내년 예산이 줄었고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시절 공약한 제약·바이오 컨트롤타워인 제약·바이오혁신위원회 설치도 요원한 상황이다.
이 부회장은 “정부에서 펀드 규모를 증액하겠다고 했지만 규모가 커져도 글로벌 임상지원 등 구체적인 목적성이 더해지지 않으면 눈먼 돈이 될 수 있다”고 경계했다. 그는 “바이오 정책에 구체성을 더해 고도화하려면 통합적인 거버넌스 기반의 로드맵이 필요한데 지금은 보건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기업벤처부 등으로 쪼개져 단편적 정책들만 양산되고 있다”며 “일몰제 기관일지라도 대통령실 산하의 직속 콘트롤타워가 필요한 때”라고 주장했다.
◇“조금이라도 투자받고, 가능할 때 상장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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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회장은 보릿고개를 지나는 바이오벤처에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기존에 기대하던 것보다 기업가치를 낮게 평가받는다고 해도 최대한 투자기회를 놓치지 말고 기회가 있을 때 상장하라는 것이 그의 조언이다. 이 부회장은 “바이오벤처 대표들을 만나면 ‘100 받을 수 있는데 70밖에 못 받게 돼도 투자금이 들어오는 대로 ‘클로즈’하라’고 한다”며 “너무 밸류를 낮게 받을까봐 상장을 철회하지 말고 낮은 공모가로 시작해 서서히 주가를 높이는 게 오히려 더 건강한 방법일 수 있다”고 했다. 현 상황은 세계적인 문제인데다 예측불가능하기 때문에 상황을 직시하고 전략을 수립해야한다는 의미다.
바이오협회도 바이오벤처들이 최대한 투자혹한기를 잘 넘길 수 있도록 투자자와 바이오벤처를 연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미국 주 정부나 각국 대사관 내 투자청, 글로벌 빅파마, 국내 대형제약사와 달리 적절한 투자처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중견제약사와 투자금이 필요한 바이오벤처와 연결하는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열고 있어요. K-바이오의 위상이 코로나19를 겪으며 많이 높아져 국내 바이오벤처에 대한 관심이나 투자수요는 커지고 있으니 반드시 기회를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