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치러진 칠레 대선에서 7명의 후보들 중 극우 보수주의자인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55) 공화당 의원이 1위를 확정지었다. 90% 이상 개표가 진행된 가운데, 카스트는 28.01%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2위는 25.64%를 득표한 급진 좌파 성향의 젋은 국회의원 가브리엘 보리치(35)가 차지했다.
두 후보와 다른 후보들 간 최종 득표율은 상당한 격차를 보였다. 우파 국민당의 프랑코 파리시 후보가 12.97%, 중도우파 연합의 세바스티안 시첼과 중도좌파 연합의 야스나 프로보스테가 각각 12.61%, 11.74%로 3∼5위에 올랐다.
카스트와 보리치는 대선 전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앞서거니 뒷서거니 각각 1위와 2위로 양립했고, 실제 선거 결과에서도 같은 결과가 도출된 것이다. 하지만 두 후보 모두 50% 이상 득표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12월 19일 결선 투표로 최종 승자를 가리게 된다. 결선투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칠레 대선에선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한 후보가 없으면 1, 2위 후보가 결선을 치른다.
최종 당선된 후보는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의 뒤를 이어 내년 3월부터 4년 간 칠레를 이끌게 된다. 최근 중도좌파와 중도우파가 번갈아 집권해온 만큼, 이번 대선은 1990년 민주화 이후 가장 양극화된 선거로 꼽힌다.
한 때 남미 경제 선진국으로 성장했던 칠레는 오랜 군부독재를 벗어나 번영을 구가했다. 하지만 2년 전 지하철 요금인상 반대 시위에 이어, 최근 교육의 질 향상을 요구하는 학생운동 및 교사시위 등까지 장기 사회 소요사태가 지속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부터는 코로나19 사태가 발발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높은 물가가 더욱 치솟았고, 칠레 경제는 위기에 직면했다.
이번 대선은 지난 2019년 지하철 요금 인상으로 촉발된 대규모 반(反)정부 시위 이후 2년 만에 치러지는 것이어서 특히 주목된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설명했다. 당시 칠레 정부는 지하철 요금을 800페소(1320원)에서 830페소(1370원)로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국제유가가 상승하고 페소화 가치가 하락했다는 이유였다.
불과 30페소, 우리 돈으로 50원을 인상했을 뿐이었지만, 높은 물가 및 빈부격차에 대해 그동안 억눌렸던 국민들의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번졌다. 시위 결과 제헌의회가 구성됐고, 현재 새 헌법 초안을 만들고 있다. 개헌안이 내년께 완성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차기 대통령은 임기 중 새롭게 제정된 헌법 수용 여부를 결정할 국민투표를 진행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두 후보는 정반대의 경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칠레 경제의 미래도 확연히 다른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FT는 “이번 선거는 최근 수십 년 동안 남미에서 최고의 성장을 일궈냈음에도 그 혜택을 국민들과 널리 공유하지 못한 칠레 경제 모델에 대한 심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카스트는 이민, 동성 결혼, 낙태에 반대하는 극단 보수주의자로, 지난 2019년 새 민족주의 공화당을 창당한 뒤 질서 회복, 세금 인하 등을 공약으로 내걸며 좌파로부터 소외된 칠레 보수표를 끌어모으고 있다. 그는 2017년 대선에도 무소속으로 출마해 8%가량 득표한 바 있으며, 1973∼1990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부독재 시절의 자유시장경제를 지향하는 경제 정책을 옹호하고 있다.
보리치는 학생운동 지도자 출신으로 2014년 의회에 진출했으며 교육 부실 항의 시위 등을 주도했다. 이번 대선에는 공산당 등 폭넓은 지지층의 연합체대표로 출마,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시절 개혁안으로 시작된 민간 개인연금 시스템 폐지와 부자증세 등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부자증세를 통한 세금은 사회복지와 환경 보호에 사용하겠다는 복안이다. 그가 당선되면 칠레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이 된다.
|
사회학자인 마르타 라고스는 “칠레 국민들이 극도로 가난하다는 것은 핵심이 아니다”라며 “다른 남미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기본을 잘 갖추고 있음에도 (경제 결실이) 동등하게 공유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세계은행에서 집계한 1인당 국민총생산(GDP)이 1100달러인데, 최소 국민 50%가 이보다 낮은 월 800달러 미만의 돈을 벌고 있다”며 “보리치와 같은 후보가 급부상한 이유”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칠레에선 대선 투표와 함께 하원 155명 전원과 상원 50명 중 27명을 각각 새로 선출하는 총선거 투표도 치러졌다. 이 역시 과반 이상 의석을 확보할 정당이 없을 것이란 관측이다. 2019년과 2020년의 반정부 시위 이후 국민들의 분노가 각기 다른 양상으로 표출되면서 사회 전반이 크게 분열돼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많으면 최대 13개 정당이 과반 의석 확보를 위해 협상·연합해야 할 것이라고 FT는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