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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군 참전 16개국 가운데 육해공군을 모두 보낸 나라는 태국과 함께 미국·캐나다·호주 4개국뿐이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미군을 제외하면 가장 늦게까지 남아 복구사업을 도왔다. 태국군은 1972년 6월 한국에서 철수했다.
11월 7일 부산항에 도착한 태국 보병대대는 여러 곳에서 다양한 작전에 참여했다. 1952년 10~11월 연천 천덕산 인근 234m 고지(일명 포크찹힐)에서 벌어진 전투에서는 백병전까지 벌이며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를 막아냈다.
미군 지휘관들은 태국군의 용맹함을 칭찬하며 ‘리틀 타이거(작은 호랑이)’란 별명을 붙였다. 태국군 대대장 끄리앙끄라이 아따난 중령은 미국 동성무공훈장을 받았고, 2016년 4월 국가보훈처 ‘이달의 6·25 전쟁영웅’에 뽑혔다.
2. 현재 한국과 태국 두 나라에서 함께 사랑받는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걸그룹 블랙핑크의 리사다. 1997년 3월 27일 태국 부리람주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K팝을 좋아했다. 유치원 때부터 댄스학원을 다녔고, 초등학교 시절 노래·댄스 경연대회의 단골 출연자였다. 2010년 YG엔터테인먼트의 태국 오디션에서 4000명의 지원자 가운데 유일하게 합격했다. 이듬해 한국으로 이주해 YG 최초로 외국인 연습생이 됐다. 2016년 8월 8일 제니·로제·지수와 함께 블랙핑크란 이름으로 데뷔한 이래 숱한 히트곡을 쏟아내며 K팝 걸그룹 최초의 빌보드 앨범차트 1위, 유튜브 구독자와 조회 수 1위, SNS 팔로워 1위 등의 빛나는 기록을 쌓았다. 이제 리사는 K팝 스타를 넘어서 태국 젊은이들의 롤모델이자 한국·태국 우호의 아이콘이다.
우리나라와 태국의 교류사는 고려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고려 공양왕과 조선 태조 때 섬라곡국(暹羅斛國·태국의 옛 이름) 아유타야 왕조의 사신이 공물을 바치며 교역을 제안했다. 태조도 답신을 보냈으나 왜구의 공격으로 600여 년 전의 교류 시도는 무산되고 말았다.
태국은 광복 이후 지금까지 줄곧 우리의 든든한 우방이자 가까운 이웃 나라다. 법무부에 따르면 올 1월부터 9월까지 태국을 찾은 한국인은 108만9888명에 이른다. 일본, 베트남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한국을 찾은 관광객 순위는 태국이 7위고, 국내 체류 외국인 가운데서는 중국·베트남에 이어 3위다.
태국 매체 네이션은 지난달 27일 ‘사랑에서 증오로? 태국인들이 한국에 등을 돌린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 여행 금지’라는 해시태그가 3만2000개나 달려 태국 엑스(X·옛 트위터) 트렌드 1위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태국 SNS에서도 한국 입국을 거부당한 사연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한 태국인은 “입국심사대에서 ‘한국에 네 번이나 관광을 왔는데 아직도 부족한가’라는 질문을 받아 황당했다”고 주장했다. 보도가 이어지자 세타 타위신 태국 총리까지 나서 이번 사안을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한국 법무부와 외교부도 서둘러 해명과 대책 마련에 나섰다.
태국 SNS나 매체에 소개된 사례는 부풀려졌거나 일부 과장된 주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 나라 우호 관계에 금이 가게 만들고 한류 인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악재다. 태국인들의 방한 거부 움직임으로 일본 관광업계가 반사이익을 누린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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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동남아시아 국가 가운데서는 태국·말레이시아·싱가포르 세 나라만 90일 상호 비자(사증)면제 협정을 체결한 상태다.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은 태국의 5배를 넘는다. 관광비자로 한국에 들어와 석 달만 불법 취업해도 태국의 연봉 이상을 손쉽게 벌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농어촌이나 영세업소에서 일하기 때문에 체류 기한을 넘겨도 적발해내기 쉽지 않다.
태국인의 불법체류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가장 손쉬운 길은 비자면제 협정을 파기하는 것이다. 입국 심사를 더 까다롭게 하거나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는 방법도 있다. 이는 태국인의 반한 감정을 키울 뿐더러 한국인의 태국 입국도 불편해질 우려가 있다.
결국 입국 심사 과정에서 신중하고 세심한 정책이 필요하다. 가급적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심사 시스템을 개선하고 태국어 통역 서비스를 확충하는 등의 개선책도 필요해 보인다. 대한민국 전자여행허가증(K-ETA)을 받고도 입국이 거부되면 당사자가 납득하도록 설명해주는 절차를 마련하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태국 정부에도 태국인의 한국 불법체류 실태를 설명하며 협조를 당부하는 한편 양국 공조를 통해 한국 불법 취업을 부추기고 알선하는 브로커들을 색출·근절하는 데 힘써야 한다.
더 나아가 농어촌과 중소 제조업체 등의 인력난을 어떻게 해소할지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 불법체류의 원인을 줄이고, 여러 부처로 나뉜 출입국 및 주한 외국인 관리 업무를 통합해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한국인들도 미국과 일본 등에 불법체류자가 많던 시절 까다로운 입국 절차를 거치며 온갖 수모를 겪어야 했다. 우리가 못살고 국력이 약한 탓이라 여기며 감내했지만 그때 생겨난 반미·반일 감정은 한동안 지우기 어려웠다.
외교는 상호주의를 기본으로 하지만 출입국 관리는 불평등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래도 역지사지하는 태도로 태국인을 대해야 한다.
6·25 때 목숨 걸고 우리를 도운 태국인의 온정을 어떻게 잊겠는가. 리사를 따라 한국에 오고 싶어하는 태국 젊은이들을 모두 예비 범법자 취급하는 것도 곤란하다. 이웃의 마음을 얻기는 어려워도 잃기는 쉬운 법이다.
◇글=이희용 다문화동포팀 자문위원(전 연합뉴스 한민족센터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