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 예정자를 미리 정해 놓은 후 공개입찰에 부쳐 최종 인수자를 확정하는 제한적 경쟁입찰(스토킹 호스) 방식으로 진행하는 만큼 한 번 더 입찰을 거쳐야 하지만 완성차 업계에서는 워낙 쌍용차 정상화에 소요되는 자금규모가 커 또 다른 유력 후보가 부상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13일 서울회생법원은 KG그룹 컨소시엄을 쌍용차 우선 인수대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쌍용차 매각주관사인 한영회계법인은 다음 주 KG그룹과 투자계약을 체결하고, 6월 초에 공개입찰을 공고할 계획이다. 공개입찰에서 KG그룹 컨소시엄보다 더 높은 가격을 써낸 곳이 없다면 최종 인수후보자로 확정된다.
이번 인수전은 KG그룹 컨소시엄과 쌍방울-KH필룩스 컨소시엄, 이엘비앤티의 3파전으로 전개됐다. 작년 매각전 때 11곳이 사전의향서를 제출했다가 정작 본입찰 때에는 유력 후보였던 SM그룹이 빠지고 이엘비앤티와 에디슨모터스의 2파전으로 진행됐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재매각전은 훨씬 뜨거웠다는 평가다.
유력 후보로 꼽혔던 KG그룹 컨소시엄과 쌍방울그룹은 비슷한 금액을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매각주관사 측에서 실제 자금조달 능력이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봤다는 전언이다. 앞서 인수 본계약까지 체결했던 에디슨모터스 컨소시엄이 잔금납입을 못해 쌍용차 M&A가 원점으로 돌아갔던 상황이 다시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KG그룹은 KG케미칼과 KG스틸, KG ETS, KG이니시스 등 상장사 5곳과 24개 비상장사를 거느리고 있다. KG케미칼의 지난해 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연결 기준 3636억원 수준이고 KG ETS 환경에너지(폐기물) 사업부 매각대금 5000억원도 있어 자금확보 면에서는 다른 인수후보에 비해 우위에 있다는 평가다.
쌍용차 인수전 출사표를 던질 때부터 사모펀드 운용사인 캑터스프라이빗에쿼티(PE)와 컨소시엄을 구성한데다 최근 경쟁사였던 파빌리온PE와도 손잡으면서 재무적 투자자(FI)도 탄탄하게 구성했다.
쌍방울그룹도 자금조달에는 문제없다고 공언해왔지만 매각주관사와 법원에 확신을 주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당초 쌍방울그룹 계열사인 광림이 유진투자증권과 KB증권으로부터 인수자금을 조달하기로 했지만 KB증권이 발을 뺀 이후 이렇다 할 FI를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쌍방울과 컨소시엄을 이룬 KH그룹이 상장 계열사 유상증자를 통해 인수자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최근 증시 상황이 좋지 않은 만큼 조달여건이 불확실하다는 평가다.
◇ 진정성에 높은 점수…KG스틸 등 회생경험도 한 몫
정성적인 면에서는 인수 진정성에 주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수후보자들이 인수 참전을 호재로 계열사 주가가 오르자 대주주 등이 주식을 팔아 차익을 챙기는 등 논란이 일었고, 쌍용차보다는 평택 공장부지 가치를 보고 인수에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던 만큼 제대로 경영해서 정상화할 의지가 있는가를 봤다는 것이다. 전체 투자금액이나 투자구조, 공익채권 변제계획, 고용승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 KG그룹 컨소시엄이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부동산을 노렸다거나 주가급등을 통해 차익실현을 했다거나 하는 논란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후보자를 낙점한 듯 하다”며 “쌍용차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일자리가 20만개에 달하는 만큼 회사를 살리겠다는 의지가 제일 중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크아웃 중인 기업을 성공적으로 회생시킨 이력도 플러스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KG그룹은 지난 2019년 동부제철(현 KG스틸(016380))을 캑터스PE와 함께 인수했다. 동부제철은 2014년 경영난으로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맺었고 2015년부터 재무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에 돌입했다. 인수 당시 총 차입금은 1조원이 넘었고 매년 순손실을 기록하며 자본잠식에 빠진 상태였다. 매각도 순조롭지 않아 매번 실패하다 2019년 KG그룹에 인수된 후 영업방식과 조직구조 개편, 적자사업 정리 등을 통해 1년 만에 흑자전환하는데 성공했다.
KG그룹의 모태면서 그룹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KG케미칼도 마찬가지다. 2003년 당시 법정관리 중인 경기화학을 곽재선 KG그룹 회장이 인수한 후 KG케미칼로 변경했고 6개월 만에 흑자전환했다.
한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쌍용차는 주인이 여러 번 바뀌면서 오랜 기간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고 노조도 강성이어서 자동차 업계에서도 쉽지 않은 매물이라는 인식이 컸다”며 “자금력도 그렇지만 기업회생 이력이 상당한 가점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토킹 호스 방식인 만큼 쌍용차 최종 인수자는 재입찰 단계까지 거쳐야 확정된다. 스토킹호스는 우선매수권자와 조건부 투자계약을 맺고 이후 공개 입찰을 통해 인수자를 확정하는 방식이다. 공개 입찰에서 더 좋은 계약조건을 제시하는 인수 후보자가 나온다 하더라도 그 조건을 우선매수권자에게 제시해 받아들이면 우선매수권자가 인수협상권을 갖게 된다. 따라서 다음달 초에 진행되는 재입찰에서 입찰가를 두고 치열한 눈치싸움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KG그룹 관계자는 “쌍용차를 지속가능한 회사로 만들어 자동차 산업 발전은 물론 건전한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다만 아직은 조건부 인수예정자이고 매각 절차가 종료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향후 남은 절차와 기간동안 면밀하게 준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