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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는 고교학점제 도입이 본격화됐다. 교육부는 고등학교 교육과정 수업량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기존 3년간 204단위 이수에서 3년간 192학점 이수로 축소했다. 1학점은 50분씩 한 학기에 16회를 이수하는 수업량이다. 각 과목은 학기당 기본 5단위에서 기본 4학점으로 줄어든다. 여기에 이수 학점 증감의 폭을 1학점을 빼거나 더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를 통해 학교에서는 다양한 선택 과목 운영이 가능해졌으며 교육과정 편성에서 유연성을 가질 수 있게 됐다.
확정된 개정 교육과정은 12월 말까지 교육부 장관의 고시 이후 교과서 개발·검정·선정 등의 과정을 거쳐 2024학년도부터 적용된다. 2024년 초등학교 1~2학년을 시작으로 2025년 초1~4·중1·고1, 2026년 초1~6·중1~2·고1~2, 2027년 전학년에 반영된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되기 전까지는 현행 2015 개정 교육과정을 적용한다.
◇보수진영 입김 다수 반영된 확정안
2022 개정 교육과정이 확정되기까지 수많은 논란이 있었다. 자유민주주의, 성 관련 표현 등 용어를 둔 갈등부터 생태전환교육·노동 등 총론 방향성에 대한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의 갈등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가 개발하던 시안이 윤석열 정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보수진영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며 갈등이 더욱 커졌다는 게 교육계의 중론이다.
이번 개정 교육과정 중학교 역사 교과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에서 ‘자유민주주의’ 용어가 ‘민주주의’와 함께 병기된 표현들이 그대로 유지됐다. 그간 진보진영에서는 ‘민주주의’가 더 중립적 표현이라고 주장했지만, 보수진영에서는 민주주의만 쓴다면 ‘인민민주주의’ 또는 ‘사회민주주의’로 해석될 수 있다며 반대해왔다.
성 관련 표현에서도 보수진영의 입김이 다수 작용했다. 고등학교 통합사회 교과에서 정책 연구진이 사용했던 ‘성 소수자’ 표현은 ‘성별 등으로 차별받는 소수자’로 수정됐고 도덕 교과에서 ‘성평등’ 용어를 ‘성에 대한 편견’으로 수정했다. 또 보건 교과에서 ‘성·생식 건강과 권리’이라는 표현이 ‘성 건강 및 권리’로 수정됐다. 이는 일부 보수 기독교계에서 생식 건강과 권리라는 표현이 낙태를 정당화 할 우려가 있다는 주장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
진보진영이 요구했던 생태전환교육과 노동존중교육은 반영되지 않았다. 앞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 진보진영에서는 교육과정 총론에 노동과 생태전환교육을 명시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교육부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주요 사항’에는 노동과 생태전환교육을 총론에 명시했으나 윤석열 정부가 들어온 뒤 국민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해당 내용이 삭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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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교육과정 개정마다 반복되는 사회적 갈등을 막기 위해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러한 의견 수렴 과정에서 오히려 갈등이 증폭됐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해 11월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주요 사항’을 발표한 이후 정책연구진의 연구와 교육과정 개정추진위원회, 각론조정위원회 등을 통해 총론과 교과별 주요한 개선 사항과 쟁점에 대한 조정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역사 교과 정책연구진이 ‘자유민주주의’ 용어에 대한 문제점을 교육부에 제기했지만, 사실상 묵살됐다는 주장이 나오며 논란이 일은 바 있다.
국민 의견 수렴 과정에서도 여러 문제가 있었다. 교육부는 ‘국민과 함께 하는 개정 교육과정’을 주창하며 다양한 의견수렴 장치를 마련했다. 지난 8월 일반 국민이 참여하는 국민참여소통채널을 통해 7860건의 의견을 수렴하기도 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일부 진영의 의견이 과대 대표됐다는 지적이 잇따른 바 있다. 또 교육부는 쟁점 사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위해 총론·교과별 공청회를 개최했다. 오히려 공청회에서 폭력 사태까지 발생하며 사회적 합의보다는 갈등에 불을 지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러한 갈등은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중장기 교육정책을 마련하기 위한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에서도 반복됐다. 국교위는 지난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6차 회의를 열고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대한 심의·의결을 진행했다. 표결에 참여한 국교위원 16명 12명이 찬성, 3명이 반대, 1명이 기권했다. 표결 과정에서 정대화 상임위원과 김석준·장석웅 위원이 표결을 거부하며 퇴장했다. 이들은 지난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국교위 의결 과정에서 충분한 토론과 합의가 없었다며 “국교위는 첫 결정으로 사회적 합의에 반하는 내용을 의결함으로써 스스로 불명예를 안게 됐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