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를 국빈방문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겸 총리를 만나 156억 달러(약 21조원)규모의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청정에너지,전기차, 스마트팜 등에 관한 수주계약과 투자관련 양해각서(MOU) 51건이다. 지난해 11월 양국이 맺은 290억 달러(약 39조원)규모의 투자협력을 더하면 모두 60조원에 이른다. 양국은 사우디 원유 530만 배럴을 울산 한국석유공사 저장기지에 비축하고, 필요시 한국이 우선 구매할 수 있는 계약을 체결하는 등 에너지 공급망 협력도 강화했다.
양국은 수교 60주년을 맞는 지난해 11월 빈 살만 왕세자의 방한을 계기로 원유 수출입 중심에서 첨단 신산업과 에너지 공급망을 아우르는 전략적 관계로 격상됐다. 석유 중심의 경제구조에서 원전· IT 등 첨단분야로 산업구조를 다각화하려는 사우디와, 첨단 기술력을 바탕으로 미래의 먹거리를 찾아야 할 한국이 상생의 토대를 마련한 셈이다. 이를 통해 5000억 달러(약 677조원)에 이르는 첨단 신도시 ‘네옴시티’ 건설에 한국 기업이 대거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수소 송급망이나 신재생 에너지 분야의 협력도 구체화되고 있다.
사우디에 이어 카타르를 국빈방문하는 윤 대통령의 이번 순방은 그런 면에서 중동외교 2.0의 출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스라엘· 하마스 분쟁으로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고, ‘포스트 오일’ 시대를 준비하는 이 지역 국가들과 협력을 확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용 삼성 회장이 “중동은 미래먹거리와 혁신 기술 발휘 기회로 가득찬 보고”라고 강조했듯 에너지와 건설을 넘어 IT, 자동차, 바이오 등 다양한 분야로 협력의 지평이 확대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1970년대 중동 건설특수는 오일쇼크로 위기에 빠진 한국 경제에 극적인 회생의 돌파구가 됐다. 신중동붐으로 불리는 이번 2차 특수를 통해 한국경제는 또다른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이번 순방에 대기업 오너 등 기업인 130명이 사절단으로 동행해 코리아 세일즈에 나서고 있다. 이들의 과감한 투자와 정부의 정교한 경제외교가 어우러져 총력전을 펼치면 중동지역은 우리에게 다시 기회의 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