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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마디가 있다. 잇지 말고 끊으라는 것처럼. ‘푸른 마디’라고 하면 으레 대나무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그건 또 아닌가 보다. 미끈하게 뻗은 단단한 몸통과는 결이 다르니 말이다. 되레 살점까지 떨어져 나간 상처 입은 연한 표피만 매달려 있지 않은가. 그런데 희한한 일이다. 전혀 약해 보이질 않는다. 이내 빳빳하게 튀어오를 태세가 느껴지니까.
작가 이귀화가 화면에 옮겨 놓은 ‘푸른 마디’는 작가의 마음과 붓을 얻은 ‘다른’ 자연이다. 경외감을 뿜어내는 스케일이 거대한 여느 자연과는 다르다는 말이다. 가령 쭉쭉 솟아 하늘에 기대는 대나무가 아니라, 납작하게 땅을 지키는 풀이란 얘기다. 실제로 작가의 작업에는 그 ‘초록 풀’이 자주 등장한다. 무질서한 엉킴 속에 질서를 잡아가는, 제자리 하나는 지킬 줄 아는 ‘잡초’ 말이다.
꼿꼿하게 서 있지도 못하는 그 잡초는 제풀에 널브러지고 위압에 짓밟히기도 한다. 마땅히 대단할 게 없다. 그런데 저 초록 풀을 작가의 화면에 들여다만 놓으면 ‘다른’ 풀이 되는 거다. 깔깔해지고 당당해지고 도도해진다. 묘사에 앞선 표현으로 구상에 앞선 추상을 완성한 작업이다. ‘풀의 소리를 듣다-다스리다 I’(2021)은 보이는 마디가 아니었다. 들리는 마디였다.
9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운니동 장은선갤러리서 여는 개인전 ‘풀의 소리를 듣다’에서 볼 수 있다. 신작과 근작 30여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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