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서민 코드`로 무게중심을 옮긴 MB 정부의 올해 세제개편안이 발표되면서 이같은 물음표가 던져지고 있다.
세재개편안이 서민·중산층, 농어민, 중소기업에 대한 3조6000억원 규모의 세제지원을 전면에 내세운 반면 고소득자와 대기업의 세부담을 강화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3년간 세수증대 효과 10조5000억원중 고소득자와 대기업의 부담 비중이 80~90% 수준으로 추정된다.
기업의 세금을 깎아주면 투자를 더해 경제전반의 활력이 높아진다는 `기업 플렌들리 정책`이나 `부자감세`라는 거센 비판에도 불구하고 종부세의 대못 등을 뽑아버린 작년 이 맘때와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표면적인 숫자만 보고 `감세기조의 퇴조`나 `서민감세-부자증세 전환`으로 판단하는 것은 확대 해석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우선 고소득자와 대기업이 상대적으로 더 큰 혜택을 누리는 소득세와 법인세의 추가 세율인하는 당초 예정대로 추진된다. 정부의 `감세기조`에는 변함이 없다는 얘기다. 기본적인 틀이 바뀐 게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일년만에 과도한 감세기조에 손질을 가했다고 볼 수 있다.
소득세와 법인세 세율 추가 인하로 총 5조원의 세금인하 효과가 발생하는 가운데 고소득자와 대기업은 3조7000억원의 세금혜택을 누릴 전망이다. `조삼모사격`으로 세금을 일년 앞당겨 거두는 금융기관의 채권이자소득에 대한 법인세 원칭수제도 부활 효과 5조2000억원을 제외한 향후 3년간 고소득자와 대기업의 실질 세부담 증가 규모 4조원대와 비교하면 `부자증세`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서민의 경우도 새로운 지원 보다 비과세 및 감면제도의 연장에 초점이 맞춰있어 `서민감세`라기 보다 `서민지원`에 가깝다.
결국 빠듯해진 국가재정을 감안해 담세력 있는 고소득자와 대기업의 비과세 및 감면제도 축소를 통해 이들의 세금인하 혜택을 서민·중산층 지원으로 부족해진 세수를 메우는데로 고스란히 돌렸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친서민 정책과 재정건전성 확보를 동시에 고려하기 위한 일종의 고육지책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이 빨라야 2013년께 재정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재전건전성 논란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안종석 한국조세연구원 조세연구본부장은 "정부의 감세기조가 바뀐 것은 아니다"며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조세체계를 합리화한 것으로 봐야한다"고 평가했다.
반면 이용섭 민주당 민생본부장은 "민생안정, 미래도약을 위한 세제개편안이라는 정부 주장과 달리 5년간 90조원이 넘는 부자감세에 따른 세수부족을 메우기 위한 중산층 증세 개편안"이라며 "소득세와 법인세 인하 지속 등 부자감세 기조를 유지했다"고 비난했다.
◇ 화두는 `친서민`..세제 일관성은 결여
정부의 올해 세제개편안은 네마리 토끼 잡기를 목표로 하고 있다. 친서민 지원 확대, 미래성장동력 확충, 고소득·전문직 과표양성화 제고, 재정건전성 확보 등이 그 것들이다.
특히 MB 정부의 `친서민 코드` 정책 변화를 담아내기 위해 서민·중산층·농어민, 중소기업에 대한 세제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위해 월세 소득공제 등 저소득층에 대한 새로운 지원제도가 도입되고 올해말로 종료되는 비과세 및 감면제도중 서민·중산층과 관련한 분야는 1~3년 연장된다.
위기 이후 미래 먹거리를 찾기 위한 연구개발(R&D) 투자 등 미래성장동력 확충을 위한 세제지원도 대폭 강화된다.
반면 소득세와 법인세 추가 세율 인하 등 감세기조는 유지하되 친서민 세제지원으로 부족해진 세수 확보 차원에서 감세기조의 혜택을 컸고 담세력이 있는 고소득자와 대기업의 경우 각종 특례제도가 대폭 축소되는 등 세부담이 확대된다.
의사등 고소득 전문직과 입시학원 골프장의 영수증 발급이 의무화되고 이를 어긴 경우를 신고하면 포상금을 주는 일명 `세(稅)파라치` 제도가 한시적으로 도입되는 등 고소득 전문직에 대한 과세 투명성 제고 방안도 추진된다.
`낮은 세율·넓은 세원` 기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경기회복 정책기조와 상충되지 않는 범위내에서 재정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병행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번 세제개편안은 경기 회복세를 뒷받침하고, 서민 중산층의 어려움을 덜어주면서 위기이후 미래를 도약을 지원하고, 재정건전성을 높이는데 중점을 뒀다"며 "감세를 통한 소비 지출 및 투자 확대기조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감세기조 유지와 재정건정성 확보 등 서로 상충되는 목표 달성의 묘책을 찾으려다 보니 정책의 일관성이 저하되는 부작용도 엿보인다. MB 정부 특유의 실용 정책이고 이를 통해 중용의 묘를 살릴 수 있다는 평가도 가능하지만 원칙이 모호해지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 고민은 `재정건전성`..내년 세수부족 땜질 `안간힘`
글로벌 경제위기에 따른 세입감소와 지출증가로 이미 재정건전성에는 빨간불이 들어온 상태다.
국가채무비율이 작년 30.1%에서 올해 35.6%로 빠르게 증가했고, 내년에는 40%에 육박할 것이라는 우려감이 팽배하다. 국내외 경제여건상 내년에도 재정의 역할이 상당부분 필요할 전망이다.
재정부가 배영식 한나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내년이후 3년간 법인세 감소분은 9조3150억원, 소득세 감소분은 4조2160억원으로 총 13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내년의 재정 역할을 여전히 필요한데 세수 감소폭이 커 재정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내년의 GDP 대비 재정적자가 -4.0%로 올해의 -2.9% 보다 더욱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내년 재정적자 규모가 올해 예상치인 50조원 보다는 축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온도차는 있지만 내년 재정적자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정부가 향후 3년간 세수증대 효과 10조5000억원중 70% 이상인 7조7000억원을 내년에 몰아넣은 배경이다. 특히 금융기관의 채권이자소득에 대한 법인세 원칭수제도 부활해 5조2000억원의 세수를 일년 앞당겨 거두기로 했다. 내년 세수구멍을 최소화하겠다는 계산이다.
윤영선 재정부 세제실장은 "금융기관의 채권이자소득에 대한 법인세를 부활하는 것은 내년도 국채를 5조원 가량 적게 발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노력이 올해 사상 최대인 366조원로 늘어날 국가채무를 감안할 때 재정건전성에 도움을 주기는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정부는 내년 이후 경제회복이 본격화하면서 2012년부터 세수증대가 자연스럽게 이뤄지기 시작할 것이라는 판단도 깔려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는 내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목표치를 4%로 잡고 있고, IMF는 2012년 성장률이 위기전 잠재성장률인 4%~5%을 소폭 웃도는 5.2%로 회복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GDP가 1%포인트 상승하면 세금은 1.2% 더 거친다.
IMF에 따르면 한국의 재정적자 규모는 올해 30조원에서 내년 43조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11년 18조7000억원과 2012년 3조8000억원으로 둔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 2013년 13조7000억원의 재정흑자로 돌아서고 2014년에는 그 규모가 40조원으로 확대될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금융기관의 채권이자소득에 대한 법인세 부활을 제외하고는 임시투자세액공제 제도 종료로 인한 세수증가가 1조5000억원으로 가장 크며, 그 다음으로 부동산 양도소득에 대한 예정신고세액공제의 경우가 1조원 가량이다.
◇ 고소득 전문직 과세투명화 `정조준`
의사 변호사등 고소득 전문직과 입시학원 골프장 등에 대한 강도높은 과세투명화 방안이 마련된 것도 이번 세제개편안의 특징이다. 전문가들은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정부는 이를 위해 건당 30만원 이상의 거래에 대해서는 영수증 발급이 의무화되고, 이를 어길 경우 처벌하는 규정이 조세범처벌법에 신설된다. 특히 2년간 한시적으로 위반 사실 신고자에 대해 20%(건당 300만원, 연간 1500만원 한도)의 포상금을 지급한다.
정부는 또 선진국 처럼 영리목적의 학원에 과세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우선 무도학원과 자동차운전학원에 대해 내년 7월부터 부가세를 매기기로 했다. 또 영어학원 등 다른 영리학원에 대한 과세 여부도 차후에 검토하기로 했다.
아울러 미용목적 성형수술에 대해 부가세를 부과하고 미용·성형수술비 등을 의료비 소득공제 대상에서 제외한다. 아울러 유흥주점 등을 부가가치세 의제매입세액공제대상에서 빼고 관광호텔 등에 대한 부가세 영세율 적용도 올해말로 종료한다.
이밖에 소액뇌물 수수자와 공여자 쌍방에게 해당 뇌물액의 10배 이하 과태를 부과하는 등 세무공원 및 세무대리인 청렴도 제고방안도 추진된다.
◇ 세제개편 `국회 변수` 남아 있어
이번 세제개편안이 정부의 희망대로 시행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입법기관인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선 소득세와 법인세 세율의 추가 인하 여부를 가늠하기에는 이르다. 내년 소득세와 법인세 세수감소분이 각각 1조5000억원과 3조5000억원인 만큼 세율 추가 인하를 유보하자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또 3주택 이상 다주택자의 전세보증금에 소득세를 물리는 개장안도 전셋값이 들썩이는 상황에서 세금을 세입자에게 전가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어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