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두 아이와 함께 김해공항을 찾은 김모(54)씨는 울상을 지으며 이같이 말했다. 김씨는 전날 오후 김해공항에서 발생한 에어부산 여객기 화재 사고를 보며 예약을 취소하고 서울로 가는 KTX를 예매하려 했지만 표가 없어 결국 김해공항을 찾았다. 김씨는 “제주항공 참사에 이어 화재까지 보니 걱정이 든다”며 “내일 당장 출근을 해야 하는데 아이들이 멀미가 심해 버스는 힘들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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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당일인 이날 김해공항 국내선은 긴 연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귀성객들로 가득했다. 가족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이들의 얼굴엔 즐거움보다는 불안함이 가득했다. 지난달 29일 무안공항에서 179명이 숨지는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한 데 이어 전날 밤 에어부산 여객기 화재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일부 시민은 전날 화재 사고 여파로 취소된 비행편의 취소 확인서를 챙기고 숙소로 발길을 옮기기도 했다.
김포로 향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던 50대 강모씨는 “어제 사고 소식이 전해지고 비행기 타고 간다고 하니 나이 많으신 부모님들께서 엄청 걱정하시더라”며 “연이어 사고가 터지니 불안한데 주변에서도 난리를 치니깐 뭔가 마음 한 켠이 불안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날 사고가 발생했던 국제선은 긴 연휴를 이용해 여행을 떠나기 위해 공항을 찾은 여행객들로 붐볐다. 전날 대형 화재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홍콩행부터 일본 도쿄·오사카·오키나와부터 중국 상하이. 베트남 하노이 등 다양한 목적지로 가기 위한 여행객들은 여권을 챙기고 수화물을 부치는 등 바쁘게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들은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항공 사고에 대한 걱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일본 오사카로 가는 김모(32)씨는 “친척들께 인사드리고 이날부터 오는 1일까지 3박 4일로 일본 여행을 하려고 한다. 여자친구와 같이 가는 첫 여행이라 떨린다”면서도 “전날 화재로 여자친구도 그렇고 나도 불안하기도 하다. 조금 지연되도 좋으니 안전하게 점검하고 출발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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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에어부산 여객기 화재의 원인이 보조배터리로 추정되며 이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한 승객은 쓰레기통에 자신이 사용하던 다회용 보조배터리를 버리고 비행기에 탑승하기도 했다. 김포행 비행기를 탑승한 정모(41)씨는 “보조배터리 사고가 전날뿐만 아니라 계속 이어졌다는 뉴스를 봤다”며 “비행 중 갑자기 머리 위에서 보조배터리가 터진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전날 화재 사고와 함께 전국에 내려진 폭설이 겹치며 김해공항 곳곳에는 결항과 지연이 이어졌다. 김해공항에는 폭설이 내리지 않았지만 전국 각지 공항에서 결항과 지연이 이뤄지며 연쇄작용이 발생한 것이다. 적게는 수분부터 길게는 2시간 넘게 지연되자 일부 승객들은 항공사에 강력히 항의하기도 했다.
김포행 비행이 2시간가량 미뤄진 30대 김모씨는 “연휴라 공항에 사람이 많을 것 같기도 하고 점심도 먹을 겸 일찍 나왔는데 갑자기 항공사에서 1시간 40분 정도 미뤄진다는 문자가 왔다. 그런데 또 방금 전 20분 더 지연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며 “KTX 표를 못 잡아서 울며 겨자먹기로 비싼 비행기 표를 샀는데 이건 정말 아닌 것 같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한편 지난 28일 오후 10시 31분쯤 이륙을 준비하던 에어부산 항공기 BX391편 꼬리 부분에서 화재가 발생해 승객과 승무원 등 176명이 비상 탈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화재로 항공기 동체 윗부분이 사실상 전소됐으며 7명이 경상을 입고 치료를 받았다. 사고 원인으로는 기내 수화물 내 보조배터리로 추정되고 있다. 조사 당국은 오는 31일부터 본격적으로 합동감식에 나서 정확한 사고 원인을 파악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