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이데일리 이명철 특파원] 출발 신호가 울리자 휴머노이드 로봇이 두 발로 트랙을 박차고 달렸다. 움직임은 아직 다소 어색했지만 속도는 인간의 세계기록을 넘어섰다. 기록은 9.39초. ‘번개’로 불렸던 우사인 볼트의 100m 세계기록 9.58초보다 빨랐다. 중국이 ‘로봇 올림픽’을 통해 휴머노이드 로봇의 기술력을 과시하는 동시에 실제 산업과 일상에 투입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러한 기술 실험을 통해 상용화를 앞당길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지난 22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로봇운동회 중 100m 예선전이 열리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이명철 특파원)
22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 국가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제2회 세계휴머노이드로봇운동회(WHRG)가 개막했다. 올해는 16개국 666개 팀, 2056대의 로봇이 참가했다. 지난해보다 참가 규모가 두 배 이상 늘었다. 미국·일본·독일 등 로봇 강국도 참가했지만 중국 팀이 641개로 압도적이어서 사실상 중국의 로봇 기술 경연장에 가깝다. 참여 기업으로는 최근 증시에 상장한 유니트리를 비롯해 베이징휴머노이드로봇혁신센터, 갤봇, 애지봇, 유비테크, 부스터로보틱스 등 중국 유명 로봇 업체가 총출동했다.
개막식에서는 베이징휴머노이드로봇혁신센터의 ‘톈궁 울트라’가 100m 예선에서 9.39초를 기록하며 눈길을 끌었다. 제자리높이뛰기 시범에서는 2.8843m를 기록해 인간 세계기록 2.45m도 넘어섰다. 특히 지난해 대회 100m 우승 기록이 21.50초, 제자리높이뛰기가 0.9564m였던 것과 비교하면 불과 1년 만에 성능이 크게 향상됐다. 축구 경기에서도 변화가 두드러졌다. 지난해 어린아이처럼 아장아장 걷던 로봇들은 올해 다리를 크게 휘둘러 공을 차고 몸싸움까지 벌였다. 골을 넣은 뒤 유명 선수의 세리머니를 흉내 내기도 했다. 더 중요한 변화는 자율성이다. 지난해에는 원격조종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올해는 대부분 종목을 로봇 스스로 수행했다. 주변 환경과 사물을 인식하고 판단한 뒤 몸체를 제어하는 능력을 시험하는 것이다. 단순히 모터 성능을 겨루는 것을 넘어 ‘피지컬 AI’의 수준을 점검하는 단계로 진입한 셈이다.
지난 22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로봇운동회 중 7대 7 축구 예선전이 열리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이명철 특파원)
탁구·테니스·역도·줄다리기 등 종목도 다양해졌다. 2016년 리우올림픽 탁구 금메달리스트 딩닝과 중국 테니스 스타 정지에 등 스포츠 스타들이 로봇과 직접 대결하기도 했다. 관심을 끄는 것은 실제 공장과 마트, 가정집을 재현한 경기장이다. 로봇들은 짐을 나르고 음식을 만들거나 집안일을 하는 것은 물론 핀셋으로 콩을 집고 나사를 조이는 등 정밀 작업에도 도전한다. 중국이 이번 대회를 단순한 기술 과시가 아니라 로봇 상용화를 위한 실험장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중국은 앞서 19일 베이징에서 세계로봇대회(WRC)를 열어 300여개 로봇 기업의 기술을 선보였다. 연이어 열린 로봇 운동회까지 고려하면 중국이 로봇을 차세대 제조업 경쟁력의 핵심으로 보고 기술 개발과 실제 적용을 동시에 서두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도 “높은 사양과 화려한 움직임을 추구하던 로봇들이 이제 실제 상황에서 일을 해내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 22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로봇운동회 개막식에서 휴머노이드 로봇들이 행진 중이다. (사진=이데일리 이명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