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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에 겨눈 칼.. `피해는 中企·농어민'

이학선 기자I 2012.11.21 16:08:55

대형마트·SSM 규제로 속타는 농가·협력업체
매출 20% 줄었는데 비용은 그대로..결국 인원감축

[이데일리 이학선 김유정 기자] “회사 설립 초기보다 더 어렵습니다. 대형마트가 한달에 두번 쉬면서 마트에서 발생하는 매출이 15~20% 줄었어요. 그렇다면 재래시장으로 나가는 물량이라도 늘어야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예전 그대로입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재래시장도 못살리면서 마트로 나가는 물량만 줄어든 거죠. 타격이 큽니다.”

이마트에 플라스틱 욕실용품을 납품하는 동서P&W 허대선 사장은 대형마트 영업규제가 더 강화될 것이라는 소식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지난 2000년 설립된 이 회사는 직원 30여명을 둔 중소 제조업체다. 생산한 제품의 70%는 이마트에, 나머지 30%는 재래시장 도매상에 납품한다.

동서P&W는 대형마트 영업규제가 피크를 이룬 지난 7월 매출이 1억4000만원으로 1년전보다 2000만원 정도 줄었다. 반면 재래시장에서 거둔 매출은 5000만원으로 작년과 달라진 게 없었다.

허 사장은 “판매가 줄었다고 비용이 덜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라며 “원부자재를 들여올 때 일정 물량 구매시 받을 수 있는 DC(가격할인)를 못받아 이중삼중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결국 동서P&W는 고용하던 외국인노동자 15명을 9명으로 줄였다. 허 사장은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과 거래하는 중소협력업체와 임대상인 등이 21일 서울 여의도 통합민주당사 앞에서 규제강화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 규제가 중소납품업체의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재래시장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기대했던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엉뚱한 곳이 불똥을 맞고 있는 것이다. 시장경영진흥원이 매월 조사하는 시장경기동향조사를 보면 재래시장 상인들의 체감경기는 대형마트 규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 4월 반짝 상승했지만 전반적으로 예년수준을 밑돌고 있다.

특히 농어민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주요 판로인 대형마트와 SSM에 대한 규제가 더욱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는 현재 대형마트와 SSM 의무휴업일을 월 2회에서 3회로 늘리고, 영업시간도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10시까지 제한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대형마트나 SSM뿐 아니라 이들과 거래하는 납품업체가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에 대한 월 2회 의무휴업 규제에도 불구하고 재래시장 상인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예년보다 더 나빴다. 반면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로 이들과 거래하는 농어민과 납품업체, 입점업체 피해는 컸다. 한국체인스토어협회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납품업체 등에 총 5조3370억원의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경기도 일산에서 열무, 시금치, 얼갈이 등을 재배하며 롯데슈퍼에 채소를 공급하는 그린플러스는 올 여름 다 자란 열무를 시장에 팔지도 못하고 폐기처분했다. 열무는 생육기간이 짧아 하루이틀만 수확이 늦어도 웃자라 상품성이 떨어진다. 이 회사는 롯데슈퍼가 의무휴업으로 문을 닫자 수확한 열무를 강서도매시장으로 가져갔지만 제값의 60% 정도밖에 받지 못했다. 이 일을 겪은 후 도매시장에 내다파는 것을 포기했다고 한다.

이 회사 대표는 “농업도 브랜드 가치를 중시하는데 이런 식으로 판매하느니 차라리 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며 “이런 일이 다시 반복될 것을 생각하니 답답하다”고 했다.

홈플러스에 농산물을 공급하는 신선미세상은 대형마트 월 2회 휴무로 월매출이 지난해에 비해 11% 감소했다. 결국 비용을 줄이기 위해 직원 90명 가운데 15명을 내보냈다. 신재민 신선미세상 이사는 “의무휴업일이 2일에서 3일로 늘어나면 월매출은 20% 정도 줄어들 것”이라며 “어느 회사가 이 같은 피해를 입고 견딜 수 있겠냐”고 항변했다. 그는 “마트만 보지 말고 농가나 협력업체들이 입게될 피해도 봐달라”고 하소연했다.

생선회와 같은 수산물을 납품하는 업체에도 비상이 걸렸다. 익명을 요구한 한 수산물유통업체 사장은 “마트에 납품하려고 위생시설과 시세관리에 많은 투자를 했는데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후회스럽다”면서 “월 3회 휴무가 시행되면 직원들을 줄여야할지 모르겠다”며 답답해했다. 그는 “우리같은 유통업자도 문제지만 양식장을 가진 사람들의 고민은 더 크다”며 “판로가 좁아지면서 문을 닫는 양식장들이 속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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