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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G마켓, 성추행 피해자에 "외부 발설 말라" 합의 시도…"2차 가해"

백주아 기자I 2023.04.10 10:35:25

조사 과정서 가해자 옹호 발언 수차례
피해자 의사에 반한 분리조치로 불이익 줘
"가해자 옹호·진정 취하 종용 명백한 2차 가해"
G마켓 "고용부 이번주 결론…후속 조치 충실 수행"

[이데일리 백주아 기자] G마켓이 사내 성추행 사건 조사·징계 절차에서 부실한 대처로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이어간 것으로 확인되며 논란이 예상된다.

사측이 사건 조사 과정에서 수차례 피해자에게 가해자를 옹호하는 발언을 한 것은 물론 합의금을 제시하며 고소·진정 취하 및 언론사 제보 금지 서약을 요구하며 입막음을 시도하는 등 피해자에게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안겨주면서다. 전문가들은 기업이 가해자 중심 사고방식에 따라 피해자를 경계하며 벌인 2차 가해 행태에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G마켓. (사진=G마켓)
10일 이데일리가 확보한 G마켓 성추행 사건 관련 자료·녹취 등에 따르면 G마켓 사측 관계자는 사내 워크숍에서 발생한 성추행 사건 조사·징계 과정에서 피해자 A씨에 대해 2차 가해 행위들을 지속 이어간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 6일 G마켓은 지난해 10월 진행된 사내 워크숍에서 직속 상사였던 가해자 B팀장이 A씨에게 자신을 ‘오빠’라고 부르라며 강제로 껴안는 등의 성희롱·성추행을 벌인 사건 처분과 관련해 A씨가 원하는 부서 이동을 시켜주고 B씨에게는 정직 1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복된 2차 가해…가해자 남고 피해자 퇴사

문제는 사측이 사건 처리 과정에서 A씨에게 다각적 2차 가해를 가했다는 점이다.

A씨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사측 인사팀장은 A씨와의 면담과정에서 A씨와 및 증인을 향해 ‘B씨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B씨가 반성하고 있고 (A씨를) 많이 걱정하고 있다’ 등 B씨를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이어갔다. 인사 담당자가 A씨가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 있는 발언을 하며 지속적 고통을 준 것이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 조치 또한 미흡했다.

G마켓은 사건 접수 날인 지난해 12월 12일 직후 A·B씨 모두 업무에서 배제하고 유급 휴가를 줬다. 하지만 정작 부서 이동 당사자는 A씨뿐이었다. B씨는 정직 1개월 처분을 받았지만 기존 직위, 직책, 부서를 모두 유지했다.

G마켓측은 ‘A씨가 부서 이동을 원해 보내줬다’고 주장했지만 A씨는 6회 이상의 면담·이메일을 통해 자신과 B씨 동시 부서 이동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사측은 A씨가 요구한 B씨의 부서 이동 요구는 묵살하고 A씨만 부서 이동 조치를 했다. 이는 사측이 주장하는 ‘A씨가 희망하는 부서로 전보 조치했다’는 주장과 대립하는 부분이다.

A씨는 B씨와 완전히 분리된 타 본부 이동에 대한 수차례 요청을 전부 거절당하자 사측에 요구에 응하기로 했다. 그러나 B씨를 대면해야 한다는 공포에 지난 2월 24일 퇴사를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퇴사일인 3월 15일까지 A씨는 부서 이동 없이 기존 소속 상태로 회사를 그만두게 된 것이다.

성폭력 사건 전문 이은의 변호사(이은의 법률사무소)는 “피해자가 문제 제기를 했는데 원하는 부서로 전보조치가 되지 않았거나 전보조치된 부서가 가해자와 대면 접촉이 있는 부서로 가게 돼 결국 피해자가 회사를 다니기 어렵게 된 정황이 있다”며 “본질적 문제는 사건 조사·정직 기간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리조치 됐다고 해도 그 기간이 지난 후에도 분리조치가 상당 기간 필요한 부분이 지켜지지 않은 점”이라고 지적했다.

남녀고용평등법(고평법) 제14조에 따라 사내에서 성 비위을 이유로 징계할 때 성희롱 사안 자체뿐만 아니라 절차나 양정이 문제가 되는 경우 사측은 가해자에 대한 정당한 징계 처분뿐만 아니라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피해자 보호 조치를 함께 고려하도록 유의해야 한다.

이 같은 내용은 G마켓 취업규칙 101조에도 명시돼 있다. 고평법에 따라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행위는 사법처리 대상이다.

박현수 노무법인 스피로 노무사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인사이동을 통한 분리조치는 피해자가 희망하는 경우가 아닐 경우 2차 가해에 해당할 수 있다”며 “회사가 피해자 의사에 반해 인사이동을 강제한 것은 직장 내 성희롱 신고를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 조치를 취한 것으로 고평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G마켓 성추행 피해자 A씨가 인사팀에 보낸 메일 일부 발췌. (사진= A씨)
◇사측, 합의금 제시 진정·고소 금지 서약 요구

G마켓 측은 퇴사를 결심한 피해자에게 합의금을 제시하며 입단속까지 시도했다.

A씨가 제공한 녹취에 따르면 사측은 지난달 14일 퇴사 절차를 밟기 위해 방문한 A씨에게 ‘사용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내용의 인쇄된 합의문을 건냈다. 이날도 사측 관계자는 ‘(A씨 사건으로 자신이) 잠을 거의 못잤다’, ‘A씨도 힘들었겠지만 회사도 힘들었다’는 식의 발언을 지속적으로 이어갔다. 사측의 합의 요구에 A씨는 자리에서 즉시 거절 의사를 밝혔다.

A씨에 따르면 합의문에는 합의 금액과 함께 △사건 관련 비밀유지 △국가 민원 3일 내로 전부 취하 △언론 제보 금지 △민·형사상 사용자 책임 물지 않기 등 4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시간을 더 줄 테니 적극 고려해달라는 사측의 제안에 A씨는 원만한 합의를 원하지만 사측이 제시한 조건으로는 합의할 수 없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에 사측도 A씨의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고 답변했다. 현재 A씨는 B씨를 ‘성폭력 범죄 특례법’에 따라 형사 고소하고 사측을 상대로 고용노동부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어둔 상태다.

김유경 돌꽃 노동법률사무소 대표(노무사)는 “인사팀장이 피해자를 불러 행위자를 옹호하는 발언을 반복하고 피해자가 진행 중인 각종 법률 대응을 취하할 것을 종용하는 행위 자체가 피해자에 대한 명백한 2차 가해에 해당한다”며 “회사가 해당 사안에 대해 피해자 관점에서 정상적 절차를 밟는 대신 서둘러 무마하려는 태도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G마켓 성추행 피해자 A씨가 작성한 사직서 원본. (사진=피해자 A씨)
◇전문가 “피해자 보호조치 미흡”

전문가들은 대기업이 가해자 중심적 관점에서 피해자에 대한 보호 조치를 미흡하게 행한 것이 이 사건의 본질이라고 입을 모았다. 사측이 문제를 일으킨 가해자가 아닌 문제 제기를 하는 피해자를 경계하면서 벌인 2차 가해로 피해자에게 심각한 고통을 안겨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는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 사건은 피해자의 근로권을 보호해 주는 게 기본”이라며 “사내 워크숍에서 발생한 사건인 만큼 회사는 사용자로서 관리 감독을 게을리한 책임이 있고 이후 불이익한 조치로 A씨가 계속 근무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그만두는 것이기 때문에 성폭력 보호 의무에 관한 법률에도 위반된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G마켓 관계자는 “A씨를 위한 후속 조치 또한 A씨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하면서 사규뿐만 아니라 대형 로펌 김앤장의 자문을 거쳐 신중히 처리했다. 하지만 A씨의 부서 이동 관련 협의 과정에서 사측과 이견이 있어 A씨가 퇴사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용노동부에 사실관계와 조치 사항을 성실하게 자료로 제출했고 이번 주중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며 “노동부 조사결과 이후 필요한 후속 조치가 있다면 충실히 수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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