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호 연구실장은 “SVB사태를 보면서 챌린저 뱅크가 곤란한 거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는데 하나의 사건만을 갖고 챌린저 뱅크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도 “비를 피하는 입장에서 리스크 관리를 먼저 하고 천천히 진행하면 좋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서병호 실장은 “SVB는 법적으로는 캘리포니아 주법 은행이지만, 사업 포트폴리오가 캘리포니아 지역의 스타트업(신생벤처)에 집중된 일종의 특화은행”이라며 “은행산업 구조개선 논의 과정에서 챌린저 뱅크 도입이나 지역에 특화된 지방은행 신설이 검토되는데, 자산 포트폴리오가 다각화되지 못하면 특화영역에서 문제가 생길 때 경영난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SVB는 고객 대부분이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으로 자금 조달의 88%가 이들로부터 거둬들인 거액의 기업예금이었다. 자산 측면에서도 총 자산의 57%를 유가증권, 특히 만기가 긴 10년 이상의 장기 채권에 대부분 투자했다. 이 때문에 금리 급등 시 기업공개(IPO) 어려움 등으로 투자를 못 받은 스타트업 예금이 급감한 반면 자산 보유가치는 급락해 예금이탈이 증가하자 유동성 문제에 봉착했다.
그는 “과거 외환위기에도 대구지역 중소기업을 전담하던 대동은행, 기업금융에 특화됐던 장기신용은행, 근로자 서비스에 특화했던 평화은행, 지역색이 강했던 동남은행, 경기은행, 충청은행, 강원은행, 충복은행 등이 퇴출됐다”며 “특화은행의 리스크 관리 이슈는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제 금융시장 불확실성과 기존은행 자본확충 필요성 등을 감안할 때 관련 논의를 당분간 연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 실장은 종합지급결제업 도입에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SVB는 최고리스크관리책임자(CRO)가 몇 년간 없고 유동성 규제비율도 적용하지 않고 등 허술하게 관리감독을 했다”며 “우리나라 은행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종합지급결제업과 같은 ‘유사 은행업’이 많아지면 감독당국이 미처 자세히 보지 못한다면 생길 수 있는 일”이라고 우려했다.
SVB는 2022년 4월 CRO가 사임한 이후 CRO 없이 경영을 해왔다. 하지만 미 감독당국은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SVB는 또 2018년 유동성 규제와 악조건을 가정해 대응 능력을 시험하는 스트레스테스트 등의 대상은행이 총자산 500억달러(65조)에서 2500억달러(325조)로 상향되면서 유동성 규제(LCR 등)도 적용받지 않았다.
LCR은 금융위기 등이 터졌을 때 뭉칫돈이 빠져가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향후 한달간 예상되는 순현금 유출액 대비 현금과 국공채 등 고유동성(현금화 하기 쉬운) 자산 비율을 말한다.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발생 2년 뒤 2010년 금융규제를 대폭 강화한 ‘도드-프랭크법’을 제정했지만,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2018년 법을 개정해 규제를 완화했다.
그는 “종지업과 같은 새도우 뱅킹(비은행)은 은행 수준의 규제와 감독을 받지 않으면서 은행과 다름이 없는 역할을 수행하기에 도입 시 거시건전성 리스크가 증대하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금융시장 불안 문제가 종료된 이후에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금융당국은 현재 ‘고인물’ 과점 체제에서 손쉬운 이자장사로 배를 불리며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 은행의 경쟁 강화를 위해 챌리저 은행이나 종합지급결제업 등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