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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더스토리’(INDUSTORY)
현대 산업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의 과거와 현재를 역사·정치·문화·기술·경제 등 복합적인 시선으로 이해하고 이를 통해 미래를 보는 능력을 기른다. 현대 문명의 기반이 된 ‘철’(鐵)과 ‘사’(沙·모래)부터 코로나19 사태로 주목받고 있는 ‘약’(藥), ‘의’(醫) 등 이 세상 모든 산업의 역사를 다룬다.
☆ 임규태 공학자·교육자·기업가
미국 조지아공대에서 15년간 교수로 재직. 조지아공대 부설 전자설계연구소 부소장, 조지아공대 기업혁신센터 국제협력 수석고문. 국제 통신표준화 의장. 빅데이터·소프트웨어·게임·블록체인·기후변화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에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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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이란 주식회사에 자본을 대고 이에 따라 교부받는 증서다. 개인이나 단체는 특정 회사에 일정 금액을 투자해주고 그 대가로 주식을 받는다. 투자자는 정해진 기간마다 보유한 주식에 걸맞게 이득을 배당 받거나 주가가 오르면 이를 팔아 차익을 챙긴다. 기업이 발행한 주식을 거래하는 주식시장은 기업 경영 뿐 아니라 국가 경제를 좌우할 만큼 실물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렇다면 주식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지위를 갖게 됐을까. 임규태 박사는 그 출발점을 중세 유럽의 흑사병에서 찾았다.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사망에 이르게 한 흑사병의 특효약이 육두구와 정향이라고 알려지자 유럽 각국은 이를 찾기 위해 대양으로 진출했다. 대항해시대의 시작이다.
대항해시대에 무역을 통해 성장한 상인들과 해적 집단이 국가와 공생하는 과정에서 근대적인 회사를 설립하는데, 이것이 동인도회사다. 임 박사는 “주식은 민간업자들이 모여 국가가 지원하는 거대 독점 기업을 설립하면서 새로운 방식의 소유 체계가 필요해 생겨났다”며 “현대경제에서 주식 제도를 둘러싸고 ‘소유와 경영의 분리’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주식회사의 기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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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식회사의 기원 ‘동인도 회사’
1492년 이슬람 제국을 몰아내고 이베리아 반도를 수복한 이사벨 여왕은 ‘알람브라 법’을 공표한다. 해당 법의 골자는 이슬람 세력과 공생하던 유대인을 추방하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유대인이 보유한 금융 자산 뿐아니라 무역업 기반까지 빼앗겠다는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터전을 잃은 유대 자본가와 조선 기술자들은 현재의 네덜란드, 벨기에가 위치한 플랑드르 지방으로 이주한다. 유대인의 자본과 해양 기술의 집합지가 된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은 금융과 해양 산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대항해 황금시대에 네덜란드 선박이 전 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를 넘어설 정도였다.
신구교간의 갈등이 심화하던 시기에 태생적으로 신교를 지지할 수밖에 없었던 네덜란드는 부에 비해 군사력이나 정치적 위상이 약했다. 가톨릭의 수호자를 천명한 신성로마제국이 해양 강국으로 키우던 스페인은 지속적으로 네덜란드를 압박했다. 결국 네덜란드는 성공회를 만들어 가톨릭과 단절에 나선 영국과 손잡고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포루투갈 연합과 해전을 치른다.
이 전쟁의 향배를 결정짓는 칼레 해전에서 영국의 승리에 큰 활약을 한 인물이 프랜시스 드레이크다. 원래 그는 해적이었다. 당시 영국 정부는 해적들에게 전쟁에 참여하는 대가로 평상시 노략질을 할 수 있는 특허를 내주는 국가 공인 해적 ‘사략선’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 제도 덕분에 드레이크뿐 아니라 수많은 해적들이 영국-스페인 해전에서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영국 국왕 엘리자베스 1세는 그들의 활약을 인정해 해적과 상인들을 모은 회사를 세우고 이 회사에 무역 독점권을 부여한다. 이렇게 설립한 회사가 영국 동인도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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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2년 총 1143명이 650만 길더(약 1310억원)를 모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공식 출범했다. 당시 동인도 회사에 자본을 댄 해적, 상인, 일반 국민들은 투자를 했다는 증서인 ‘주식’을 받았다. 1609년에는 동인도 회사 주식을 사고 팔 수 있는 최초의 주식 거래소가 암스테르담에 설립됐다. 17세기 중반 암스테르담 주식 거래소에는 주식을 전문적으로 거래하는 브로커와 딜러, 주식을 기반으로 한 현대적인 파생상품이 이미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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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산업사회의 리더로 부상
스페인과의 해전에서 승리한 영국과 네덜란드는 때론 경쟁하고 때론 협력하면서 해상 무역을 주도했다. 그러다 네덜란드 식민정부가 말루쿠 해협에 위치한 암보이나 섬에서 영국 상인 10여 명을 납치해 살해하는 ‘암보이나 학살 사건’을 일으키면서 양국의 관계는 틀어진다.
호국경 올리버 크롬웰은 ‘항해조례’를 선포해 자국 기업을 키우고 네덜란드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항해조례란 영국의 무역은 영국의 배, 즉 영국 동인도 회사 소속의 배로만 이뤄져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에 반발한 네덜란드는 영국과 전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크롬웰은 영국 동인도회사를 주식회사로 전환, 손쉽게 자본을 조달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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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영국 주식 시장의 규모는 크지 않았다. 동인도회사 주식을 제외하면 거래할 만한 회사 주식이 적었던 탓이다. 그러나 증기기관의 발명과 이에 따른 산업혁명, 철도 물류의 발달로 상황은 급변했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며 관련 주식도 넘쳐나기 시작했다.
영국 정부는 기업법을 시행해 지금까지 허가제였던 기업 설립을 7인 이상이 모이면 누구나 회사를 차릴 수 있는 등록제로 바꾸면서 산업 육성에 적극 나섰다. 임 박사는 “산업혁명으로 새로운 산업이 속속 등장하던 시점에 영국 정부는 7인이면 누구나 자유롭게 회사를 차릴 수 있도록 규제를 손봤다”면서 “산업 혁신과 맞물린 제도의 변화가 결국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탄생시켰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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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은 어떻게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됐나
1609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소속의 헨리 허드슨은 신대륙에서 한 강을 발견한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훗날 ‘허드슨 강’이라고 불리는 이 강의 하구를 ‘뉴 암스테르담’으로 명명하고 식민지 개척을 시작한다. 2차 영국-네덜란드 전쟁 결과로 네덜란드는 육두구 산지인 룬섬 지배권을 얻는 대신 이 지역을 영국에 넘긴다. 이 지역을 넘겨받은 영국은 당시 해군 사령관 요크 공작 제임스 2세의 작위를 따 ‘뉴 요크’라 이름을 바꿨다. 이곳이 바로 오늘날 세계 금융의 중심지 ‘뉴욕’이다.
세계를 대표하는 금융 일번지 ‘월 스트리트’도 뉴욕 맨해튼 섬에 위치해 있다. 월 스트리트라는 이름의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다. 네덜란드에서 최초로 이주한 월룬(Walloon) 가문에서 따왔단 설도 있지만 1640년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대형 나무 목책(Wall)을 세운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초창기 월 스트리트는 주식 거래가 아닌 최초의 노예 거래소였다. 1711년 월 스트리트에 50명 정도의 노예를 수용할 수 있는 건물을 세우고 이곳에서 노예를 거래했다. 이후 월 스트리트에 주식 거래자들이 월 스트리트의 미국산 플라타너스 나무(버튼우드·Buttonwood) 옆에서 주식을 거래하기 시작했다. 1792년 24명의 주식 거래자들이 모여 수수료를 0.25%로 제한하는 등 공정 거래 합의서인 ‘버튼우드 협정’를 체결했다. 버튼우드 협정은 미국의 역사뿐 아니라 금융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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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 거래소의 혁신과 더불어 뉴욕이 세계 금융의 중심이 되는데 공을 세운 인물이 바로 찰스 다우다. 그는 ‘월 스트리트 저널’을 만들어 미국 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의 소식을 전달했다. 그뿐만 아니라 통계학자 에드워드 데이비드 존스와 함께 다우 지수를 만들어 공정한 기업 가치와 주가 정보를 제공하는 선진 금융 제도를 도입했다.
임 박사는 “1971년 등장한 나스닥은 컴퓨터를 이용한 자동 거래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다시 한 번 주식 거래의 혁신을 이뤘다”라면서 “뉴욕이 금융 일번지로서 현재의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혁신 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여 이를 시장에 접목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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