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뱅스는 알래스카에서 북극권에 가장 가까운 도시다. 겨울에는 낮의 길이가 겨우 3시간42분 밖에 되지 않아 온종일 밤이 지속된다. 그러나 페어뱅스에도 여름이 있다. 겨울 밤이 길었던 만큼 길고 긴 여름의 낮이 있다. 여름이면 자정이 넘도록 사람들은 강가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며 보낸다. 아이들도 집으로 돌아갈 줄 모른다. 겨울 내내 갇혀 지낸 설움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이 강으로, 숲으로 향하는 것이다.

3만2000명이 살고 있는 알래스카 제2의 도시 페어뱅스는 20세기 초반에 만들어졌다. 황금 탐사꾼들이 유콘강을 따라 이곳까지 왔고, 마침내 페어뱅스 인근에서 노다지를 발견했다. 지금도 페어뱅스 인근에는 골드러시의 흔적이 지천이다. 사금을 채취하기 위해 땅을 파고, 운반했던 녹슨 기계들이 이름난 관광지마다 흩어져 있다.
알래스카주립대학은 페어뱅스를 찾는 여행객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이다. 지붕 위의 위성 안테나가 인상적인 이 대학의 구내에 알래스카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은 알래스카의 자연생태와 원주민들의 삶, 미국에 편입된 후의 알래스카 역사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빙하기 이전에 알래스카를 지배하던 매머드의 거대한 뿔과 승용차만한 고래의 머리뼈, 선 키가 3m도 넘는 거대한 회색 곰 등이 전시실을 채우고 있다. 카누를 타고 고래잡이를 하는 원주민들의 모습을 담은 비디오가 상영되고, 이누이트(에스키모)와 애서배스칸, 틀링기트, 알리우트 등 알래스카를 대표하는 원주민들의 의복과 생활도구 등이 전시되어 있다.

![]() |
알래스카를 남북으로 횡단하며 원유를 실어나르는 파이프 라인. (위쪽) 알래스카박물관에 전시된 파이프 라인의 사진을 바라보는 관광객. |
파이오니어 공원(Pioneer Park)은 100년 전 페어뱅스를 주제로 한 테마공원이다. 공원 한가운데 치이나 강을 따라 운항했던 거대한 증기선이 전시된 것을 필두로 다양한 테마의 거리들이 반원형으로 자리했다. 골드러시 거리나, 클론다이크 거리 등은 페어뱅스 초창기에 지어진 집들을 이곳으로 옮겨온 것들이다. 공원을 한바퀴 도는 꼬마열차는 기적소리를 울리며 요란스럽게 달린다. 사금을 캐던 강가의 풍경을 재현한 곳에 자리한 바비큐장에는 연어가 노릇노릇하게 익는다.
페어뱅스에서 북쪽으로 11㎞ 거리에는 알래스카 파이프 라인(Pipe Line) 전망대가 있다. 최근 기름 유출 사고가 벌어진 이 송유관은 알래스카의 북쪽 끝 프로드 베이에서 퍼낸 기름을 남쪽 끝 발디즈까지 운반한다. 장장 1400여㎞에 이르는 먼 여정이다. 프로드 베이를 출발한 기름은 약 9일 만에 발디즈에 닿는다.

알래스카 파이프 라인은 건설 자체가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가히 미국적인 발상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파이프 라인은 지하로 매설된 구간을 제외하고는 1285㎞에 이르는 구간이 공중에 떠 있다. 받침대를 만들어 그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이는 툰드라 지대가 얼고 녹기를 반복해 계절에 따라 높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지진에 의한 피해를 예방하고, 동물들의 이동을 원할하게 하기 위해 파이프를 공중에 뜨게 설계한 것이다. 프로드 베이에서 발견된 기름은 모피와 황금에 이어 알래스카에 찾아온 세번째 행운이다. 알래스카는 기름과 송유관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 가장 부자가 됐다. 그러나 1989년 발디즈 원유 유출 사고와 올해 8월 발생한 송유관 원유 유출에서 보여지듯 환경재앙의 주범이라는 비판도 동시에 받고 있다.〈연재 끝〉
알래스카=글·사진 김산환 기자
isan@sportsworld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