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IT업계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고도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 창업자들이 적지 않다. 자신이 만든 기업에서 상당한 부를 축적하고도 일을 하는 이들이다. 앞서 살펴본 안철수처럼 정치라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제2의 인생을 펼치는 이가 있는가하면, 수학 난제를 풀듯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의 행보는 단순히 돈을 버는 데 목표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조금이라도 우리 사회를 긍정적으로 바꿔보자는 바람이 섞여 있는 듯 하다. 이중에는 어려운 문제만 골라 푸는 괴짜 같은 이들도 있다. 이재웅은 그런 인물 중 하나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창업해 한국 인터넷 대중화 선두에 섰던 그는 성공한 사업가로 편안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문제에 도전하는 길을 택했다. 우리 사회를 기술이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기대가 깔린듯 하다.
일부는 성공했지만 일부는 실패했다. 기존 기득권자는 물론 생계를 건 사회적 약자들과도 충돌했다. 당연하게도 혹독한 비판과 비난이 뒤따랐다. 시장의 외면을 받으며 한 발 물러설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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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은 인터넷 사업자들은 이를 유지하는 비용이 문제였다. 한메일과 커뮤니티 서비스로 선두권을 달렸던 다음도 마찬가지였다. 이용자들이 갖고 있는 ‘인터넷은 공짜다’라는 인식을 바꾸기 힘들었다.
이중 이메일은 기업들의 신종 마케팅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메일 발송이 무료인데다가 전단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들에게 전달이 가능했다. 이런 이유로 대량의 상업성 스팸 메일이 남발됐다. 다음 등 이메일 서비스 사업자 입장에서는 일종의 ‘프리라이딩’이었고 이용자에게는 공해와 같았다.
지금이야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필터링 기술이 스팸메일을 걸러 낼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힘들었다. 사용자들의 불편 호소가 빗발쳤다. 사용자 불편을 해소할 만한 대안이 필요했고 이중 하나로 ‘온라인우표제’가 논의됐다. 상업용 메일을 다량으로 배포하는 기업이나 IP주소에 과금을 하자는 얘기였다.
기업들은 반발했다. 스팸메일을 줄이겠다는 명분과 대량 이메일에 요금을 부과하겠다는 목적을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상적인 영업 활동으로 발송하는 정보성 이메일까지 영향을 받는다는 우려가 나왔다. 스팸과 그렇지 않은 메일 간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많았다.
일부 기업과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들은 한메일 주소 변경 운동을 벌였다. 회원 가입을 할 때 한메일 대신 다른 이메일 주소를 사용하도록 권유했다. 실제 한메일의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한 때가 이때였다.
결국 다음은 온라인 우표제의 유료 과금을 2005년 6월 폐지했다. 시행 3년여 만이었다. 비슷한 시기 진행됐던 프리챌의 커뮤니티 유료화와 함께 인터넷 서비스 유료화에 대한 대표적인 논란으로 회자됐다. 무료에 익숙한 이용자들과 사업자들이 새로운 요금 체계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알 수 있는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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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웅이 도전했던 또다른 영역은 미디어였다. 그는 다음 창업 초기 때부터 인터넷이 기존 언론이 갖고 있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용자가 직접 참여하는 공론장의 형태였다. 프랑스에서 인지과학을 공부하던 시절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독립적인 미디어의 가능성에 관심을 갖게 된 것과도 연결된 생각이었다. 그 가능성은 인터넷 초창기 뉴스그룹인 ‘유즈넷(Usenet)’에서 엿볼 수 있었다.
이 구상이 반영된 서비스가 ‘미디어다음’이었다. 2003년 3월 나온 미디어다음은 언론사들의 기사를 제공하면서 인터넷 이용자들이 뉴스를 읽고 토론하는 기능을 강화했다. 다양한 언론사의 기사를 한 곳에서 읽을 수 있다는 점, 뉴스에 대한 의견이 또다른 여론으로 형성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받았다. 기존 언론과는 다른 소통방식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이재웅의 생각이 사업으로 구현된 셈이다.
다만 포털이 언론사의 뉴스를 배열하고 이용자들의 반응을 모은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포털의 편집권과 책임을 둘러싼 논란이다. 특히 선거철이면 이 논란은 더 거세게 일어났다. 뉴스를 제공하던 네이버도 마찬가지였다.
제주로 본사를 옮기는 ‘즐거운 실험’
이재웅의 도전은 회사 내부로도 이어졌다. ‘기업의 본사가 반드시 큰 도시에 있어야 하나’라는 관행에 도전했다. 인터넷이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 사람들을 연결하는 기술이라면 회사의 업무도 반드시 서울에서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2004년부터 다음은 서울에서 제주도로 본사를 이전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름도 ‘즐거운 실험’이었다. 그해 다음은 제주 근무 인력을 확대했다. 2006년 제주시 오등동에 글로벌미디어센터를 건립했다. 이 시도는 이재웅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계속됐다. 2012년 4월 다음커뮤니케이션은 제주첨단과학기술단지에 마련한 사옥으로 본사 이전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2004년 이후 8년만이다.
다음의 제주 이전은 다른 IT기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인 사례가 넥슨이다. 넥슨의 지주회사인 NXC와 계열사들이 2009년 제주로 거점을 옮겼다. 덕분에 2010년대 불었던 제주 이주 열풍의 단초도 다음의 제주 본사 이전이 단초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미국 시장 진출…라이코스 인수라는 도박
이재웅의 도전은 해외로도 향했다. 2004년 8월 다음은 미국 인터넷 기업 라이코스(Lycos)를 인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인수 금액은 9500만달러로 당시 환율 기준 1112억원이었다. 국내 인터넷 기업으로는 상당한 규모의 해외 투자였다.
라이코스는 인터넷 초창기 야후와 함께 널리 알려진 포털 기업이었다. 한때 미국 인터넷 시장의 대표적인 검색 서비스였지만 닷컴 버블 붕괴 이후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었다. 이재웅은 이런 라이코스 인수를 통해 미국 시장 진출을 하려고 했다. 라이코스 브랜드 인지도와 다음의 인터넷 서비스 운영 경험을 결합하면 해외에서도 경재력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미국 시장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구글이라는 검색 최강자가 자리 잡았고 다음의 대표 서비스라고 할 수 있는 이메일도 지메일, 야후, 마이크로소프트(MS)가 선점하고 있었다. 글로벌 포털로 도약하겠다는 당초 기대는 실현되지 못했고 2010년 8월 다음은 라이코스를 3600만달러에 매각했다. 인수 6년만이었다.
해외 사업뿐일까. 국내에서는 네이버와 경쟁해야 했다. 그 즈음 한국에서는 싸이월드가 인터넷 커뮤니티 서비스 강자로 떠올랐다. 검색과 뉴스는 네이버가 최강자로 군림했다. 한메일과 카페로 인터넷 대중화를 이끌었던 다음은 경쟁 주도권을 이들 기업에 내줬다. 이재웅에게는 국내외에서 동시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2007년 9월 이재웅은 다음커뮤니케이션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났다. 회사 창업 12년만이다. 2008년부터는 회사 경영보다는 후배 창업가들에게 투자하는 일을 했다. 소셜벤처 투자 조직 ‘소풍(Sopoong)’을 설립했다. 사회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사업 모델을 가진 초기 기업에 투자하고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 공간공유 플랫폼 스페이스클라우드 등이 대표적인 투자 사례다.
카카오와 합병…다음이라는 이름이 사라지다
2010년대 들어 국내 인터넷 산업은 또 다른 전환기를 맞았다. 2007년 아이폰으로 시작한 모바일화였다. PC에서 스마트폰으로 시장의 중심이 이동했다. 이메일과 검색, 인터넷 카페에 이어 모바일 메신저가 새로운 소통 수단으로 등장했다.
한게임을 창업했던 김범수가 설립한 카카오가 2010년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을 선보였다. 한메일이 무료 이메일이라는 소통 수단으로 성장했던 것처럼 카카오도 모바일 메신저라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서비스를 선점했다. ‘공짜 문자 서비스’라는 마케팅도 주효했다.
인터넷의 소통 방식은 또 한 번 바뀌었고 카카오톡과 다음의 위상을 바꿔 놓았다. 카카오톡의 카카오는 급속하게 성장하는 반면 다음은 모바일에서 별다른 차별점을 보이지 못했다. 결국 카카오에 다음이 흡수되는 형태로 합병을 하게 된다. 그때가 2014년이었다.
이듬해 2015년 9월 사명은 ‘다음카카오’에서 ‘카카오’로 변경됐다. 모바일 생활 플랫폼을 중심으로 사업을 확대하겠다는 취지를 분명히 했다. 이재웅이 1995년 창업하면서 붙였던 ‘다음’이라는 회사 이름이 20년만에 사라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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