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위기의 9월'(Black September)`을 맞고 있다는 외신 보도에 이어 일각에서는 지난 97년 외환위기 직전의 악몽을 떠올리는 성급한 관측까지 나온다. 정부가 "근거없는 소문"이라며 부랴부랴 진화에 나서는 모습도 똑같다.
경제 기초체력(펀더메털)을 따져볼 때 현재 상황이 '위기'가 아니라는 점은 대부분 전문가들이 동의한다.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외환보유고 수준이나 가계와 기업 등 경제주체의 부실도 아직까지 심각하지는 않다. 국제 유가와 원자재가 급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우려되지만 이는 한국만 겪는 현상이 아니다.
위기설은 과장됐다는 확신에 찬 정부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불안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다. 왜일까?
전문가들은 정부의 정책이 점점 시장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출범 이후 최대한 빨리 가시적인 정책을 내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조급성때문에 정부 정책과 시장 상황이 따로 노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글로벌 금융·상품 시장이 급변동하는 상황에서 안정적으로 운영돼야 할 정부 경제 정책이 정치적 상황에 따라 오락가락하면서 문제점이 확대재생산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 오락가락 정부 정책, 정부 신뢰도 떨어뜨려
실제 국제 상품시장이나 금융시장 변동성에 대한 정부의 위기 대처 능력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뒤늦게 시장 변동성에 대응하다보니 정부 정책은 롤러코스터를 타게 되고, 이런 변화가 다시 시장 변동성을 높이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환율정책이 대표적인 경우다. 정부는 7월 하반기 경제운용방향을 발표하면서 물가 안정을 위해 외환보유고를 동원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당시 '환율 전쟁'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5월 중순까지만 해도 대외균형(경상수지)과 수출경쟁력을 위해 환율 상승을 용인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 180도 달라졌다. 정부 개입은 일 평균 최대 80억달러의 달러 매도 개입을 단행한 지난달 7∼9일 3일간 환율은 45.50원 하락했을 정도로 과감했다.
하지만 불과 한달 사이 이런 대규모 정부 개입은 사라졌다. 달러화가 주요국 통화에 대해 강세로 돌아서 개입해도 개입 효과가 적다는 것이 이유다. 그러자 그동안 억눌러왔던 달러-원 환율이 용수철처럼 튀어올랐다.
|
어차피 정부가 국내외 경제 변수를 관리하지 못할 바엔 시장 추세를 급격히 바꾸기 보다는 미세조정에 그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재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한국과 같은 변동 환율시장에서 정부 정책이 있다고 하는 게 말이 안된다"면서 "이런 이야기하면 외국 투자기관이나 외신에서는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환율 뿐 아니라 금리, 재정, 물가 등 거시 정책들이 모두 이 같은 전철을 밟았다. 출범 초 성장을 최우선하던 정부는 고유가로 물가가 폭등한다는 비판에 6월부터 정책 우선 순위를 물가 안정으로 급선회했다. 국제유가는 지난 6월부터 오르기 시작했지만 정부는 지난 5월 중순까지도 국제유가·원자재 가격 급등에 무관심했다.
정부 재정정책은 지난 4월 당시 국가재정법을 고쳐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겠다는 입장에서 5월 추경 편성을 포기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6월들어 국가재정법을 고치지 않고 추경을 편성하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통화정책을 책임지는 한국 은행은 금리 인상이 정부 경기 부양책에 찬물을 끼얹는 정책이라는 정부측 시각을 의식해 물가급등을 사실상 방관하다 지난달 뒤늦게 금리 인상에 나섰다.
◇ 시장 신뢰 회복이 우선
전문가들은 이명박 정부가 노무현 정부와 다른 색깔을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이런 문제점들이 더 커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국내외 자본 시장이 개방되고 경제가 복잡해진 상황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과 할수 없는 일을 우선적으로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찬희 중앙대 교수는 "정부 정책을 하는 사람들이 과거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절 국가 경영을 자꾸 생각하는데 경제가 커지고 복잡해지고 특히 권력의 상당 부분이 국회로 넘어간 상황에서 행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며 "우선적으로 정부에 대한 기대를 많이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정부의 물가 관리나 경기 부양책을 예로 들며 "행정부 정책이 70년대식으로 촌스러울 뿐 아니라 시장에 믿음을 주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선진국에서는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방식보다는 시장에 시그널을 주는 방식으로 정책을 운용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이런 정책적 실수 때문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썰물처럼 밖으로 나간다고 단정하기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위험 상황에서 시장 변동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한국경제 규모를 생각해보면 외국인들이 채권에 투자한 67억달러를 몽땅 뺀다고 해서 경제가 무너질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면서도 "그런 정도의 가능성만으로 시장 혼란이 온다는 것은 투자자들이 한국정부를 못 믿는다는 점을 말해준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이 국내외 투자자들을 설득하기에 일관성이 없고 즉흥적으로 운영되면서 시장 신뢰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며 "시장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 불확실성인 만큼 정부가 시장에 시그널을 주면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20년 ‘흉물' 골프장에 1000가구…서울 유일 신규택지 가보니 [르포]](https://image.edaily.co.kr/images/Photo/files/NP/S/2026/08/PS26081400042t.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