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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중개사의 책임을 부정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울산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대법원 2026. 5. 29. 선고 2025다220652 판결).
일당의 수법은 이러했다. 이들은 가장 임차인을 모집하고 전세계약서를 위조한 뒤, 그 임차인 이름으로 전세보증금 담보 대출을 받아 대출금을 가로챘다. 일당은 사기죄 등으로 이미 유죄가 확정됐다. 금융기관은 2020년 12월 1억 원을 빌려주고도 그 돈을 돌려받지 못하자, 계약서를 써 준 중개사를 상대로 대출 원리금 9,100여만 원 가운데 4,000만 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
1심과 항소심은 모두 금융기관의 청구를 기각했다. 어떤 이유에서일까? 임대차를 중개할 때 중개사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는 임차인을 보호하려는 것이지, 대출을 업으로 하는 금융기관까지 보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중개 과정에 잘못이 있더라도 금융기관의 손해와 이어진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항소심은 계약서에 임대인의 주민등록번호와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던 점을 들어, 신분증을 확인하고 전화로 본인 의사를 확인했다는 중개사의 해명도 근거 없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출발점부터 달랐다. 공인중개사법은 중개가 완성된 때에 거래계약서를 작성해 거래당사자에게 주라고 정한다(제26조 제1항). 뒤집으면 중개하지 않았다면 계약서를 써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실제 거래당사자가 아닌 사람에게 계약서를 건넸다면, 제3자가 그 서류를 진실한 것으로 믿고 거래에 나설 수 있다는 사정을 중개사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민법은 남의 불법행위를 도운 사람도 함께 책임지게 한다(제760조 제3항). 여기서 돕는 행위란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직접·간접의 모든 행위”를 말하고, 일부러가 아니라 부주의로 도운 경우도 포함된다.
구체적 사정도 중개사에게 불리했다. 대리인이라던 사람이 내민 임대인 도장은 인감도장이 아니었고, 대리권을 받았음을 증명할 자료를 받아 둔 흔적도 없었다. 정작 계약서에는 대리인 표시 없이 계약 당사자가 직접 서명·날인한 것처럼 적혀 있었다. 전세계약서가 대출 심사에서 채권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첫 번째 서류로 쓰인다는 점도 중개사가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다.
같은 판단은 이미 16년 전에 나와 있었다. 2010년 대법원은 중개 없이 전세계약서를 써준 중개업자에게, 그 계약서를 담보로 돈을 빌려준 대부업자의 손해를 배상하라고 했다(대법원 2010. 5. 13. 선고 2009다78863, 78870 판결). 사안의 구조가 이번 사건과 거의 같아,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도 그 판단을 그대로 인용했다. 반면 원심은 앞서 본 것처럼 중개사 주의의무의 보호 대상을 임차인으로 한정해, 그 법리를 이 사건에 적용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이를 법리 오해로 지적했다.
대법원도 중개사가 조직적·계획적 범행에 속아 계약서를 써준 것으로 보인다고 인정했다. 다만 그 사정만으로 과실이 없다고 볼 수는 없고, “손해배상책임 제한 사유로 볼 여지가 있을 뿐이다”라고 했다.
전세사기는 위조된 계약서 한 장에서 시작한다. 공인중개사가 그 종이에 자기 이름을 적고 도장을 찍으면, 아무도 확인하지 않은 계약이 확인을 거친 계약처럼 보이게 된다. 이번 판결은 그 서명과 도장에 어떤 책임이 따르는지 밝혔다. 중개사가 중개하지 않은 거래의 계약서를 대신 써 주면, 아는 사람의 부탁이든 급한 사정이든 그 자체로 공인중개사법을 어기는 것이다.
■하희봉 변호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학과 △충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4회 변호사시험 △특허청 특허심판원 국선대리인 △(현)대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 국선변호인 △(현)서울고등법원 국선대리인 △(현)대한변호사협회 이사 △(현)로피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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