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시리야.” “네, 말씀하세요.”
애플 기기 이용자라면 익숙할 인공지능(AI) 비서 서비스 ‘시리’(Siri)입니다. 아이폰, 아이패드, 애플워치 등을 이용한다면 언제 어디서든 “시리야”라고 불러서 이 기능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공연장에서 ‘시리’ 작동을 조심해달라는 ‘시리주의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공연 도중 객석에서 뜻하지 않은 ‘시리’ 작동을 조심해달라는 건데요. 오는 30일까지 공연하는 서울시극단 연극 ‘키스’가 대표적입니다. 공연장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티켓 부스에선 다음과 같은 공지사항을 만날 수 있습니다.
“본 공연은 ‘시리아’를 배경으로 극 중 ‘시리아’ 단어가 여러 번 언급됩니다. 음성인식 기능으로 ‘시리’가 응답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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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공지를 봤을 땐 다른 공연장에선 볼 수 없는 내용이라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공연을 관람한 뒤엔 왜 이런 공지를 내걸었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키스’는 칠레 극작가 기예르모 칼데론의 희곡인데요. 극 초반 유쾌하게 시작해 예상치 못한 반전과 함께 관객으로 하여금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그만큼 공연에 대한 몰입도가 중요합니다. 만약 실제로 공연장에서 ‘시리’가 “네, 말씀하세요”라고 답했다면 어땠을지, 상상만 해도 아찔해집니다.
공연계 ‘시리주의보’는 ‘키스’가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 3월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막을 내린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극 중 등장인물이 연극을 연습하는 장면에서 ‘실비아’라는 배역이 등장하는데요. 이를 ‘시리’로 오인하는 경우가 있었던 겁니다. 이에 공연 시작 전 배우들이 관람 전 유의사항을 직접 소개하며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휴대전화를 꼭 꺼주세요. 우리 연극에는 ‘실비아’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친구 ‘시리’가 ‘실비아’를 ‘시리야’로 오해해 대답하는 재앙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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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자주 보지 않는다면 공연 도중 ‘시리’ 한 번 켜지는 게 무슨 대단한 일인가 싶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공연장에 ‘시리주의보’가 내려진 이유는 그만큼 관객이 공연을 보는 동안 오롯이 작품에 집중해주길 바라는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공연을 보는 이유는 많겠지만, 그 중에선 복잡하고 힘든 현실을 잠시 잊기 위한 것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또는 이번 주말 공연장을 찾는다면 공연 관람 전 스마트폰을 끄고 온전히 공연에 빠져주세요. 아이폰 사용자라면 ‘시리’도 잠시 꺼주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