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은 체납자의 가상자산을 압류해 체납세를 징수하고 있으며, 경찰은 보이스피싱과 투자사기, 마약, 불법도박 등 각종 범죄로부터 압수한 가상자산을 확보하고 있다. 검찰 역시 범죄수익 환수 과정에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스테이블코인 등 다양한 디지털자산을 압류하고 있다. 앞으로는 법원의 몰수·추징 집행, 지방자치단체의 지방세 체납 압류, 관세청의 밀수·외환범죄 수사 등으로 관리 대상이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압수하거나 추징한 가상자산을 누가, 어떻게 안전하게 보관할 것인가. 현재는 상당수 국가기관이 민간 커스터디 사업자의 기술과 서비스를 활용하고 있다. 이는 초기 단계에서는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국내 커스터디 사업자들은 국제 수준의 보안 기술과 지갑 관리 역량을 갖추고 있으며, 디지털자산 보관 경험도 축적해 왔다. 그러나 국가가 관리해야 하는 디지털자산의 규모와 종류가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단순한 민간 위탁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가 나타나고 있다.
가상자산은 현금이나 귀금속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금고에 넣어두면 끝나는 자산이 아니다. 개인키를 안전하게 관리해야 하며, 해킹과 내부자 위험, 시스템 장애, 블록체인 네트워크 변화에도 지속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무엇보다 개인키가 유출되거나 분실되면 자산을 영구적으로 잃을 수도 있다. 국가 자산 관리에 있어 이러한 위험은 결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더욱이 앞으로 국가가 관리해야 할 자산은 비트코인에 그치지 않는다. 스테이블코인, 토큰증권(STO), 실물자산 토큰(RWA), NFT 등 다양한 디지털자산이 관리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고 디지털자산 생태계가 확대될수록 국가 역시 새로운 형태의 자산관리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해외는 이미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미국은 연방수사국(FBI), 국세청 범죄수사국(IRS-CI), 국토안보수사국(HSI) 등이 압수한 가상자산을 확보하고, 최종 처분은 연방보안관청(USMS)이 담당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전문 민간 커스터디 기업과 협력해 보관과 매각을 수행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디지털자산 관리체계를 더욱 고도화하기 위해 전문 커스터디 서비스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영국 국가범죄청(NCA) 역시 디지털자산 압수 역량을 확대하고 있으며, 독일과 스위스도 압수 자산 관리 과정에서 민간 커스터디 전문기업과 협력하고 있다. 싱가포르와 홍콩은 디지털자산 허브 정책의 일환으로 기관투자자 수준의 커스터디 인프라를 육성하면서 공공과 민간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한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들 국가가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방향은 분명하다. 국가는 정책과 관리체계, 감독 기능을 담당하고 민간은 기술과 운영을 맡는 구조를 선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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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이러한 기능을 직접 수행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빠르게 변화하는 블록체인 기술에 대응할 전문 인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고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 공공부문의 인사와 조직 운영 특성상 민간 수준의 전문성을 장기간 유지하기 어렵고, 최신 보안기술과 운영 노하우를 꾸준히 축적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정부 내부에 별도의 커스터디 조직을 설치해 직접 운영하는 방식은 비용과 효율성 측면에서도 적절한 대안이라고 보기 어렵다.
반대로 국가가 확보한 디지털자산을 단순히 민간에 맡기는 방식에도 한계가 있다. 압수·몰수·추징한 디지털자산은 궁극적으로 국가가 책임져야 할 공공자산이다. 관리 기준과 보안 정책, 감사 체계, 최종 통제권은 국가가 보유해야 하며,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결국 필요한 것은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커스터디도 아니고, 민간에 모든 것을 맡기는 커스터디도 아니다. 정부는 정책과 거버넌스, 보안 기준과 감독체계를 마련하고 최종 관리 책임을 담당하며, 실제 커스터디 기술과 운영은 일정한 자격과 보안 역량을 갖춘 민간 전문사업자가 수행하는 공공-민간 협력(Public-Private Partnership) 모델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정부 주도의 공공커스터디(Public Custody) 체계이다. 여기서 말하는 공공커스터디는 정부가 모든 업무를 직접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디지털자산 관리의 최종 책임과 통제권을 갖고, 민간 커스터디 사업자는 기술과 운영 역량을 제공하는 국가 디지털자산 관리 플랫폼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현금을 한국은행 금고에서 관리하듯 국가가 확보한 디지털자산 역시 국가가 책임지는 ‘디지털 국고(Digital Treasury)’를 구축하자는 개념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는 국내 커스터디 사업자의 보안기술과 운영 경험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러한 체계가 구축되면 여러 장점이 있다. 첫째, 국가기관마다 제각각 운영되는 커스터디 체계를 하나의 표준으로 통합할 수 있다. 국세청, 경찰, 검찰, 법원, 지방자치단체 등이 동일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자산을 관리하게 되면 보안 수준과 관리 품질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둘째, 국가 자산의 안전성이 향상된다. 다중서명, 하드웨어 보안모듈(HSM), 콜드월렛, 접근권한 분리, 실시간 감사체계 등 최고 수준의 보안기술을 국가 표준으로 적용할 수 있다.
셋째, 행정 효율성이 높아진다. 기관별로 각각 계약을 체결하고 별도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보다 국가 차원의 공동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 예산과 운영 측면에서 훨씬 효율적이다. 넷째, 국내 커스터디 산업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 공공커스터디는 민간 사업자를 배제하는 정책이 아니라 국내 커스터디 산업을 국가 디지털 인프라의 핵심 파트너로 육성하는 정책이 되어야 한다. 정부는 정책과 감독을 담당하고 민간은 기술혁신과 서비스 경쟁력을 높이는 구조가 만들어질 때 우리나라 디지털자산 산업 역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무엇보다 공공커스터디는 단순한 자산 보관 사업이 아니다. 국가 디지털자산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첫걸음이다. 앞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 토큰증권(STO),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공공 블록체인 서비스 등 디지털 금융이 본격화되면 국가 역시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자산을 관리해야 한다. 지금 구축하는 공공커스터디는 미래 디지털 금융 인프라의 기반이 될 가능성이 크다.
디지털자산 시대에 국가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가상자산을 보유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느냐에서 결정된다. 이제는 국가와 민간이 경쟁할 것이 아니라 협력해야 한다. 정부는 제도와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민간은 세계 최고 수준의 커스터디 기술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생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공공커스터디는 정부가 민간의 역할을 대신하는 정책이 아니다. 국가가 책임을 지고 민간이 전문성을 더하는 새로운 국가 디지털 인프라이다. 정부가 중심이 되고 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한국형 공공커스터디’ 구축에 대한 논의를 더 이상 미룰 이유가 없다. 그것이 디지털자산 시대 국가 자산을 안전하게 지키는 길이며, 동시에 대한민국 디지털자산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가장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해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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