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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업계 관계자는 “경영권 분쟁 당시 일본항공의 회생방안 사례를 놓고 3자 연합과 대한항공은 갑론을박을 벌였다”며 “3자연합은 JAL을 배워야한다고 했지만,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이제 오히려 JAL이 KAL한테 배워야 할 처지”라고 말했다.
코로나19로 항공업계가 직격탄을 맞은 가운데 일본항공은 수조원대 손실로 올해 2012년 증시에 재상장한 이후 처음으로 적자경영을 우려하는 반면, 위기를 기회로 삼은 대한항공은 화물사업 강화로 글로벌 항공사 중 거의 유일하게 흑자경영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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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일본항공은 지난 2분기(7~9월, 일본 회계연도 기준)에 850억엔(약 92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시장 예상치 715억엔(약 7700억원)보다 손실 폭이 컸는데 이 기간에 국제선 여객 수송이 전년 대비 97%가량 감소하면서 일본항공은 대규모 영업 적자를 피할 수 없었다. 일본항공은 지난 1분기(4~6월)에 937억엔(약 1조 100억원)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2분기에도 적자에 머물면서 상반기에만 1787억엔(약 1조 9400억원)으로 손실 규모가 급증했다.
일본항공은 하반기 역시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1000억엔(약 1조 800억원)가량 더 적자폭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항공은 지난달 30일 실적발표에서 2020년 회계연도(2020년 4월~2021년 3월)에 연결 재무제표 기준으로 영업손실은 2400억~2700억엔(약 2조 6000억~2조 9000억원)을 기록할 것이라고 밝혔다. 매출은 5300억~6000억엔(약 5조 7000억~6조 51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7~62%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지난달 27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등 시장이 예상한 2300억엔(약 2조 5000억원)보다 적자폭이 커진 것이다. ‘일본의 하늘’이라 불렸던 일본항공이 연간 결산에서 적자를 기록한 것은 2010년 법정관리까지 갔다가 2012년 주식시장에 재상장된 이후 처음이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일본항공의 경영환경 개선이 당분간은 불투명하고 흑자로 전환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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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은 경쟁사인 아시아나항공과 비교해도 튼튼한 기초 체력을 증명했다. 아시아나항공도 지난 2분기 1151억원 영업이익을 기록하면서 6분기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지만, 에어부산과 에어서울 자회사의 경영약화 등 영향으로 3분기 영업손실 1001억원으로 다시 적자 전환할 것으로 전망된다.
◇적자vs흑자 실적 가른 것은 ‘화물’ 특수
지난 3월 한진그룹의 지주사 한진칼의 주주총회를 앞두고 3자연합은 경영 정상화 방안을 놓고 일본항공의 사례를 강조했다. 3자연합은 “5000억원 적자였던 일본항공을 2조원 흑자로 만든 사람들은 항공 비전문가인 이나모리 가즈오 전 교토세라믹 회장과 공대 출신 IT(정보통신) 전문가들이다”라고 강조했다.
수개월이 흐른 뒤 코로나19 위기로 상황은 대역전됐다. 한·일 대표 항공사의 실적을 가른 것은 화물 사업에 있는 것으로 업계는 분석했다. 파산한 경험이 있는 일본항공은 당시 회생절차 과정에서 수익성을 이유로 당시 보유하고 있던 화물기 10대를 매각, 화물 사업을 접었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전용 화물기가 단 한 대도 없다. 현재 일본항공이 보유하고 있는 여객기는 235대인데 회사 규모가 대한항공보다 2~3배 큰 만큼 시장이 호황일 때는 대규모 수익을 거뒀지만, 코로나19로 국제선 하늘길이 사실상 봉쇄된 상황에서는 대규모 적자라는 부메랑으로 작용한 것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일본항공은 당시 30% 이상 인력 감축, 자회사 매각은 물론 당시 일본에서 뉴욕으로 가는 노선도 없애는 등 ‘차떼고 포떼는’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긴축적으로 회사를 운영해 되살아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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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은 지난 6월부터 여객기 좌석 위에 안전장치인 카고 시트 백을 설치해 화물을 수송해 화물 공급도 늘렸으며, 고효율 대형 화물기단의 강점을 활용해 화물 수익 극대화를 꾀해왔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해운사업도 파산 후에 배가 없어서 수출 못한다고 하는데 항공도 마찬가지다”며 “대한항공이 유가파동, 외환위기 등을 거치면서도 화물 네트워크를 잘 다져 꾸준히 영업력을 유지해왔던 게 든든하게 버티고 있었고, 최근 화물 사업 강화로 태세를 빠르게 전환해 어려움 속에서도 빛을 발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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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업은 유류비 다음으로 인건비 비중이 큰데 임직원의 고통분담도 한몫했다. 대한항공은 지난 4월부터 국내 직원 순환(유급)휴직을 진행하고 있다. 당초 이 기간은 10월 15일까지였지만, 경영환경 악화에 따라 12월 15일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조원태 회장을 비롯한 임원은 지난 4월부터 최대 급여 50%를 반납했다. 반면 일본항공은 급여삭감 없이 사내 유보금으로 버텨 상대적으로 적자 규모가 컸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일본항공은 비용절감과 투자억제에 나섰다. 일본항공은 인건비와 광고 투자비 등을 최대한 줄이고 항공기 추가 도입 등 투자에 대한 비용도 총 1900억엔(약 2조 600억원) 지출을 줄일 계획이다. 또한 대형 항공기와 노후 항공기를 중심으로 방출 시기를 앞당기고 있으며 B777 기종은 2023년까지 모두 퇴출할 계획이다.
대한항공은 여객기 2대도 화물 전용기로 개조해 운송에 투입하면서 화물 매출을 계속 늘리고 있으며, 지난 4월부터 무급 휴가에 들어간 외국인 조종사 일부를 최근 복직시켜 화물기 운항에 투입했다. 무엇보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기대하고 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최근 전 세계에 필요한 백신 수송을 위해서는 8000여대의 보잉747 화물기가 필요할 것으로 예측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글로벌 제약회사의 백신을 한국에서 생산하면 전 세계로 운송해야할텐데 항공 화물 시장에는 기회”라며 “냉장을 필요로 하는 제품이기 때문에 관련 백신 수송에 필요한 ‘의약품 운송을 위한 자격’을 갖춘 대한항공의 화물 운송 노하우가 활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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