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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재의 겨레말]바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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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재 기자I 2012.10.15 14:49:24
[이데일리 이길재 칼럼니스트]{조바심} 철이면 해변가 도두리 서호(제주도 지명) 아지망들이(아주머니들이) 대구덕에(대바구니에) 갈치를 지고 올라와 팔았다.《현기영: 도령마루의 까마귀》

‘조바심 철’은 ‘조바심’을 내기 쉬운 시기, 아니면 ‘조바심’을 내는 계절? 물론 아니다. 현기영의 소설에 나타난 ‘조바심’은 농작물의 ‘조’와 ‘벼, 보리 따위의 이삭에서 낟알을 떨어내는 일’의 뜻을 갖는 ‘바심’이 결합된 말이다. ‘조바심’은 국어사전에 ‘조의 이삭을 떨어서 좁쌀을 만드는 일’로 풀이되어 있는 말임에도, 왠지 낯선 느낌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주변엔 이미 ‘바심꾼’들이 한 데 모여 ‘손바심’이나 ‘발바심’, ‘도리깨바심’을 하는 ‘바심마당’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기 때문일 것이다.

도급기(稻扱機)의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바심꾼들의} ‘어거- 띠-, 읫읫’ 하고 태질을 하는, 그 기운찬 소리를 들을 때… 《심훈: 상록수》

콩이며 수수, 메밀 등 발바심할 것은 {발바심을} 하고 도리깨질할 것은 도리깨질을 하여 밭곡식 마당질을 끝내고… 《송기숙: 암태도》

그는 갑갑하다 못해 차라리 사람을 서넛 사서 {도리깨바심이나} 개상질을 해 봤으면 싶기도 했다.《이문구, 우리동네 강씨》

그날의 그 더위는 {바심마당}이 패이게 쏟아지기 전엔 후련할 성싶지가 않게 찌고 있었다.《이문구: 장한몽》

‘바심꾼’은 ‘바심을 하는 일꾼’, ‘손바심’은 ‘손으로 낟알을 털어 거두는 일’, ‘발바심’은 ‘발로 밟아 하는 바심’, ‘도리깨바심’은 ‘도리깨로 하는 바심’, ‘바심마당’은 ‘바심을 하는 마당(탈곡마당, 마당질)’이다.

‘바심마당’에서 ‘바심꾼’들의 ‘바심질’은 ‘조바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초겨울 햇볕이 다사하게 드는 날이며 동네 아낙들은 누구네 집 마당에 삼삼오오 모여든다. 마당 한 편엔 ‘나락가리(혹은 나락베눌, 표준어로는 ’볏가리‘)’가 덩그러니 서 있고, 아낙들은 하나 둘 마당가를 빙 둘러 ‘홀태(그네)’를 펴기 시작한다. ‘벼바심(방언으로는 ’베바심, 나락바심‘)’이 시작된 것이다. ‘벼바심’은 ‘벼의 낱알을 거두는 일’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바심마당’에서는 철에 따라 도리깨질을 하여 ‘보리바심’이나 ‘콩바심’을, 긴 막대가 하나로 깻단을 툭툭 쳐서 ‘깨바심’을 한다.

가을 {벼바심을} 하기 위해 석공은 매년 봄가을로 마당을 새로 하였다.《이문구: 관촌수필》

개울에서 물장구치며 놀다가 해질녘에 돌아가면 {보리바심이} 널린 멍석 옆에서 절구질하다 또 옷을 적셨다고 사설하던 할머니의 모습…《허춘식(북측 작가), 혈맥》

그날도 벌에 나가 {바심질을} 하면서 새로운 정보도 받아 가지고 집에 돌아와 막 저녁을 먹고 있는데 누가 찾질 않겠어요.《박태민: 4번수》

‘조바심, 발바심’은 ‘벼바심, 콩바심’ 등과 더불어 국어사전에 올라 있는 말이지만, ‘바심꾼, 바심질, 도리깨바심, 바심마당’은 아직 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 말들이다. 이들은 ‘이삭바심, 이슬바심, 잔바심’등과 더불어 우리의 농경문화를 오롯이 담아내는 언어유산이다. ‘이삭바심’은 ‘이삭을 주워 바심하는 일’, ‘이슬바심’은 ‘이슬이 채 마르기도 전인 이른 아침부터 하는 바심’이며, ‘잔바심’은 ‘바심을 하다 처진 것을 모아서 하는 바심’을 뜻한다.

{이삭바심으로} 얻은 싸라기에다 고구마를 놓은 거라고 어머니는 곧잘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곤 했는데? 《윤흥길: 땔감》

그해 봄도 다 된 어느 날, 그날도 대복이 부름에 걸떠서 새벽부터 {이슬바심을} 한 날이었다.《이문구: 관촌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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