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서 금연치료?'…천억짜리 금연프로그램 혈세낭비 논란

유태환 기자I 2016.09.11 19:05:37

정형외과도 금연 치료 의료기관에..'우후죽순' 지정
전문 상담은 5분도 안 돼..금연 치료제 처방이 전부
1인당 최대 100만원 지원…연간 예산만 1000억 달해

지난 1일 오전 서울 중구 을지로입구역 7번 출입구 앞에 설치된 흡연부스에서 시민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사진=유태환 기자)
[이데일리 유태환 기자]해마다 1000억원이 넘는 혈세를 투입해 운영하는 금연 치료 프로그램이 주먹구구식으로 엉성하게 운영되면서 세금 낭비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지원하는 금연 프로그램은 건강보험공단이 금연 치료 의료기관으로 지정한 전국 1만 1484개 병원에서 시행 중이다. 이 중 최근 3개월 내 치료 실적이 있는 곳은 전체의 절반이 약간 넘는 7151곳이다.

◇ 산부인과·정형외과도 금연치료 의료기관 지정

“현재 복용하는 약이 있나요?” “금연 치료제 복용 방법은 약국에서 알려줄 겁니다. 3일 정도는 입이 마르고 잠이 잘 안 올 수도 있어요.” 최근 기자가 금연 치료 프로그램 상담을 받기 위해 찾아간 서울 성동구의 한 의원. 문진표 작성부터 내과 담당의 상담을 마치기까지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설명 내용도 금연 상담이라기보다는 약 복용에 대한 부작용 안내가 전부였다.

부실 운영의 첫 걸음은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금연 치료 의료기관 지정이다. 치료 실적이 있는 7000여 곳 중에는 정형외과와 산부인과를 비롯해 경락(經絡) 치료 전문 한의원 등 금연 치료 전문성이 의심되는 병원들이 적지 않다.

건보공단은 금연 치료 의료기관 선정 시 진료 과목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소속 의료진이 건보공단에서 제공하는 5시간짜리 교육만 이수하면 금연 치료 의료기관으로 지정해준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내과 병원장은 “24주 동안 총 12차례 상담하도록 돼 있다. 특별한 검진 등은 없고 간단한 상담을 하는 정도”라며 “처음 방문시 처방 약의 부작용을 설명하고 이후 금연 여부를 구두로 확인한 뒤 추가로 약을 처방해 주는 게 전부”라고 털어놨다.

7주 전부터 금연 치료를 받아오고 있다는 직장인 이모(28)씨는 “병원을 3번 방문할 동안 처방전을 받아 금연 치료약을 복용한 것 외에는 전문적인 상담은 전혀 없었다”며 “정부 지원 금연 치료라는 게 결국 ‘약을 먹고 알아서 끊으라’는 게 전부인 듯 싶다”고 말했다.

병원은 환자 한명 당 19만원 가량의 수익을 올린다. 의료기관은 1·2회차 각 12주 프로그램의 첫 번째 상담 시 진료비 명목으로 2만 2830원을, 2~6번째 상담 시에는 1만 4290원을 건보공단으로부터 지원 받는다. 환자가 24주 프로그램을 모두 이수할 시 12번의 상담을 통해 의료기관이 지원받는 진료비는 총 18만 8560원이다.

건보공단은 금연프로그램 효율성 제고를 위해 금연 치료 우수 기관 인증 및 금전적 인센티브 제공 등을 검토 중이다.

부실한 관리 탓에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일부 양심 불량 흡연자들은 지급받은 금연 치료제들을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를 통해 팔아치우기도 한다. 5만원짜리 챔픽스(champix)의 경우 온라인 중고매장에서 3만~4만원대에 거래된다.

◇1인당 최대 100만원 지원…사후 관리는 뒷전

진료비와 약값, 사은품 등을 포함해 정부가 지원하는 금액은 1인당 최대 100만원 정도다. 지난해 2월부터 금연 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해온 정부는 금연 치료 프로그램에 작년에 이어 올해도 1000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1·2회차 각 12주씩 총 24주 동안 진행되는 금연 치료 프로그램 상담을 받을 동안 진료비와 금연 치료제 비용 등 회차당 3만원 가량의 본인 부담금이 있지만, 12주 프로그램을 이수하면 금연 성공 여부에 관계 없이 돌려받을 수 있다. 또 8주가 지나면 13만~16만원 상당의 스마트 밴드와 전동 칫솔 등 사은품도 제공한다.

이같은 지원에 힘입어 올 1월부터 지난달까지 금연 프로그램 참여자는 23만 8835명으로 이미 지난해 참여자(22만 8792명) 수준을 넘어섰다.

김선택 납세자연맹 회장은 “건보공단이 지원하는 금연 치료 프로그램은 국민의 세금 1000억을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물 쓰듯 하는 셈”이라며 “가난한 사람과 서민에게 걷은 담뱃세로 제약사의 배를 불리는 행태”라고 말했다.

주무기관인 건보공단 또한 금연 프로그램 운영에 일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수천 곳이 넘는 병원들이 금연 프로그램을 제대로 운영하는지 일일이 관리·감독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금연 치료 과정에서 전문적인 상담이 제일 중요하지만 의료 환경이 처방 중심이라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면서 “공단도 금연 프로그램 운영에 일부 부실한 점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 금연 교육·홍보 등에 내실을 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금연 프로그램 등 금연 사업에 투입하는 예산은 올해 1763억원에서 내년 1993억원으로 약 13% 증가할 예정이다. 보건복지부는 장기 흡연자 8000명을 대상으로 한 폐암 검진 시범 사업 시행 예산으로 29억원을 신규 배정하고 국가 금연 지원 서비스에 투입하는 예산을 1365억원에서 1480억원으로 약 115억원 증액한다는 방침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원하는 금연 치료 프로그램을 받으면 1차례 상담 시 처방해주는 금연 치료제 ‘챔픽스’(champix). 1회 처방량 가격이 약 5만원 이상인 고가의 약품으로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1통 당 3만~4만원대에 불법거래가 이뤄지기도 한다. (사진=유태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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