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민간 주도의 경제 활성화를 천명했지만 애쓰모글루 교수는 경제 불평등과 기후 변화와 대응해서는 국가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며 민주주의를 통한 국가-사회권력 균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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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2022 KSP(경제발전 경험 공유사업) 성과 공유 컨퍼런스’에 참석한 애쓰모글루 교수는 기조 강연 후 기자회견을 통해 국가와 사회권력의 균형, 경제 성장에서 민주주의의 중요성 등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애쓰모글루 교수는 MIT 경제학 교수로 30여년간 재직 중인 유명 경제학자다. 2005년에는 전미경제학회가 경제 분야 업적을 남긴 40세 미만 경제학자에게 수여하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2년 발간한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추천하기도 했다. 그는 책에서 경제적 요인에 의해 국가 운명이 달라질 수 있음을 실증 연구를 통해 규명하고 국가 성패를 결정 짓는 요인은 제도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 체제 경제정책을 강조하는 것처럼 애쓰모글루 교수도 “(경제) 번영에 있어서 가장 가까운 지름길은 민주주의 기반이 폭넓게 자리 잡게 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다만 애쓰모글루 교수가 말하는 자유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은 ‘규제 없는 자유’가 아닌 적절한 제도 속 성장이다. 그는 “실제 민주주의 국가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규제를 만들고 이를 통해 세수를 늘려 다시 보건 분야 등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성장했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 위기로 민족주의·보호주의가 대두하면서 민주주의는 위협받고 있다. 애쓰모글루 교수는 “코로나 위기를 잘 극복한 한국·대만 등을 보면 민주주의 제도를 잘 활용했고 과도한 셧다운(봉쇄)을 한 중국의 효과는 장기적으로 볼 때 의문”이라며 “최근 포퓰리즘이 부상하고 새로운 국제 질서가 나타나고 있지만 그럴수록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경제를 둘러싼 여건이 점차 변화하면서 국가 개입은 점점 커지고 있고 이에 따라 사회권력과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애쓰모글루 교수는 “경제 불평등 격차가 갈수록 벌어져 국가가 견고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하고 기후 변화에서는 국가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며 “국가의 개입이 커지는 만큼 사회가 더 강력하게 민주주의에 참여해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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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사회권력 균형에 있어서 한국의 걸림돌은 정치적 분열이라고 지목했다. 그는 “정치 분열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 신뢰를 구축하고 다양한 계층간 의사소통이 중요하다”며 “한국은 민주주의의 전환과 시민·노동운동 발전 등 강점을 갖고 있는 만큼 그동안 쌓은 성과를 기초로 성장하면 된다”고 말했다.
빠르게 고령화하는 인구구조 등 구조적 문제 속에서도 한국이 이룬 경제 성장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한국은 자동화와 디지털 기술을 잘 활용해 노동집약 산업에서 벗어났고 앞으로도 사회적 평등을 위해 양질의 일자리가 더 많이 나오길 바란다”며 “다양한 분야의 인력 (양성) 교육과 대기업 주도에서 폭넓은 주체들의 경제 체제로 전환도 마무리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신냉전 체제에서 경제 변화는 상당히 위험하고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과 중국간의 갈등도 크게 불거질 수 있는 리스크다.
애쓰모글루 교수는 “중국은 과거 서방과 충돌을 최소화했지만 최근에는 러시아를 지지하는 등 반(反)서방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한국 등에는 상당한 위험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특히 중국은 기술적으로 세계 리더가 되고 있어 앞으로 미·중간 경제 협력 등이 변수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