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형 대법관 퇴임…새 판례 다수 이끈 민사법학계 권위자

하상렬 기자I 2022.09.02 14:17:17

6년 임기 마치고…2일 대법원서 퇴임식
"진보·보수 가둬선 안돼…''법적 이성'' 갖춰야"
교수로 21년 후학 양성하다 박근혜정부 때 임명
''양심적 병역거부 판례 변경'' 등 사건 주심 맡아

[이데일리 하상렬 기자] 민사법학계 권위자로 다수의 판례 변경을 이끌어 낸 김재형 대법관의 6년 임기가 마무리됐다. 그는 대법관들을 진보와 보수의 틀로 가두는 것에 우려를 표하는 퇴임 일성을 전한 뒤 대법원을 떠났다.

김재형 대법관이 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본관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사진= 대법원)
◇구성원 박수 속 퇴임…“대법관, 진보·보수 틀 가둬선 안 돼”

김 대법관은 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우리 사회는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지만, 대법관을 보수 혹은 진보로 분류해 어느 한쪽에 가둬두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법관이 보수와 진보를 의식하게 되면 법이 무엇이고 정의가 무엇인지를 선언하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당부했다.

이어 김 대법관은 “굳이 말하자면 저는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고, 그 중간도 아니며, 사법 적극주의와 사법 소극주의 가운데 어느 한쪽을 선택하고자 하지 않았다”며 “저는 여전히 법적 이성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제가 한 판결이 여러 의견을 검토해 최선을 다해 내린 타당한 결론이기를 바랄 뿐”이라고 했다.

그는 입법·정치 영역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사법부의 영역으로 넘어오는 것에 대한 우려도 표했다.

김 대법관은 “입법이나 정치 영역에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 사안인데도 법원의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며 “입법으로 해결해야 할 모든 문제를 사법부가 나서서 해결하려고 해서도 안 되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국회의 입법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는 문제에 대해 입법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국민들이 권리 구제를 받지 못하거나 불필요한 소송으로 이어져 사회적 낭비를 초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입법적 해결은 주로 장래에 일어날 일을 규율하기 위한 것이므로, 당사자들이 법원에 가져온 바로 그 문제까지 해결해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김 대법관은 퇴임 인사를 마친 뒤 법원 구성원들의 박수 속에서 대법원을 나섰다. 김 대법관의 정식 임기는 오는 4일 자정까지로, 후임으로 지명된 오석준 대법관 후보자는 국회 임명동의 절차가 진행 중이다.

김 대법관의 차후 행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재형 대법관이 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본관에서 열린 퇴임식에 참석하고 있다.(사진= 대법원)
◇21년 후학양성, 민사법 권위자…굵직한 사건 새 판례 이끌어

전북 임실 출신의 김 대법관은 서울 명지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1986년 28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서울지법 서부지원 판사로 법관 생활을 시작한 그는 약 3년반만에 법복을 벗는다. 그는 당시 서울대 교수였던 양창수 전 대법관의 제안으로 서울대 민법 교수로서 학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1년간 후학 양성과 연구에 매달려 있던 김 대법관은 2016년 박근혜 정부에서 대법관에 임명됐다. 당시 그는 파산법과 도산법 등에 정통하고, 여러 교과서를 쓴 민사법학계의 대표적인 권위자로 꼽혔다.

김 대법관은 기존 선례를 절대적인 가치로 두지 않고 비판적인 사고를 갖고 새로운 법리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대법관은 보수 정부에서 임명됐지만, 시대적인 사회상을 반영한 진보적인 판결이나 노동자 등 약자의 편에 선 판결을 다수 내놓았다. 또한 그는 대법관 전원이 심리하는 전원합의체 제도도 적극적으로 활용해 새로운 판례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김 대법관은 종교적인 신념을 이유로 군입대를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주심을 맡아 병역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첫 판례를 남겼다. 그는 국회의원에게 ‘종북’, ‘주사파’ 등의 표현을 사용한 것은 민법상 명예훼손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결도 도출해 냈으며, 사적 공간에서 상호 합의 아래 이뤄진 동성 군인간 성관계도 군형법상 추행으로 처벌해선 안 된다고도 판결했다.

또 김 대법관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처분의 적법 여부를 따지는 전원합의체에서 시행령에 근거한 법외노조 통보가 위법하다고 본 것에서 더 나아가 해고 노동자의 조합원 자격을 부정하는 노동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별개 의견을 내기도 했다.

한편 김 대법관은 미쓰비시중공업의 국내자산 매각 사건 재항고심 중 한 사건의 주심을 맡았다. 그러나 그의 임기가 실질적으로 만료되면서 관련 사건의 최종 판단이 늦춰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재형 대법관이 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본관에서 열린 퇴임식을 마치고 대법원을 나서고 있다.(사진=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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