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브로커 연극으로 만난 아름다운 진주의 비밀[알쓸공소]

장병호 기자I 2024.08.02 15:43:49

4일 폐막하는 연극 ''당연한 바깥''
탈북 관련 실제 사건 모티브로 제작
반전 거듭하는 인물들의 이야기
''안''과 ''밖'' 규정 짓는 세상 향한 질문

‘알쓸공소’는 ‘알아두면 쓸모 있는 공연 소식’의 줄임말입니다. 공연과 관련해 여러분이 그동안 알지 못했거나 잘못 알고 있는, 혹은 재밌는 소식과 정보를 전달합니다. <편집자 주>
연극 ‘당연한 바깥’의 한 장면. (사진=프로젝트그룹 쌍시옷)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진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아시나요? 진주는 조개가 내부에 이물질이 들어오면 이를 격리시키기 위해 이물질을 겹겹이 감싸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겉으로 보면 아름다운 보석이지만, 그 실체는 격리와 배제를 경험한 ‘이물질’이라는 것이죠.

지난달 20일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개막한 연극 ‘당연한 바깥’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연극에서 진주 이야기가 왜 나오느냐고요? 작품의 주제를 표현하는 일종의 상징이라고 할까요. 이물질 때문에 만들어진 진주는 겉보기엔 ‘안’과 ‘밖’의 구분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세계는 ‘안’과 ‘밖’을 구분하는 수많은 선으로 가득합니다. 진주처럼 우리는 안과 밖의 구분없이 아름다울 수는 없는 걸까요. ‘당연한 바깥’을 보며 개인적으로 한 생각입니다.

연극 ‘당연한 바깥’의 한 장면. (사진=프로젝트그룹 쌍시옷)
작품은 탈북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막이 오르면 무대는 중국 베이징에 위치한 주중스페인대사관으로 변합니다. 북한에서 목숨을 걸고 강을 건너 중국으로 건너온 탈북자들이 자유를 찾기 위해 이곳을 찾습니다. 그러나 대사관 문이 닫히기 전 한 여인이 딸의 손을 놓치고 맙니다. 아이는 중국 공안이 보호를 하게 되죠. 아이가 북으로 이송될까 불안해하는 여인 앞에 남한에서 온 국정원 요원 2명이 찾아옵니다.

여인의 정체는 북한 주민의 탈북을 돕는 ‘브로커’입니다. 국정원 요원들은 이 사실을 알고 여인에게 접근한 것이죠. 요원들은 여인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아이를 다시 만나고 싶다면 다시 북한으로 넘어가 한 사람을 구해올 것을요. 한국전쟁 당시 북한으로 끌려간 국군포로의 탈북을 도우라는 지시입니다.

연극 ‘당선자 없음’으로 2023년 제59회 백상예술대상 백상연극상, 제31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이양구 작가의 신작입니다. 이양구 작가가 2021년 혜화동1번지 7기 동인이었던 송정안 연출과 함께 선보였던 연극 ‘비타민P’를 새로 개작한 작품입니다. 2002년 3월 주중스페인대사관에서서 있었던 실제 탈북 사건, 2016년 4월 중국 내 북한 식당 종업원이 남한으로 입국했다 ‘기획 탈북의혹’이 제기됐던 사건, 여기에 한국전쟁 이후 북한의 포로가 돼 돌아오지 못한 국군포로의 이야기 등을 하나로 엮어냈습니다.

연극 ‘당연한 바깥’의 한 장면. (사진=프로젝트그룹 쌍시옷)
반전 스토리를 좋아한다면 ‘당연한 바깥’은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울 것입니다. 등장인물은 총 5명에 불과하지만, 장이 바뀔 때마다 인물들의 감춰진 진실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진실은 단순히 ‘반전’만을 위한 설정은 아닙니다. 등장인물은 탈북자, 국정원 요원, 정신과 의사 등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제각각 나름의 사연을 갖고 있다. 이들의 진실이 드러날수록 관객은 한 사람을 하나로 규정하는 것이 가능한지 스스로 질문하게 됩니다. 분단의 비극을 다룬 작품은 많지만, ‘당연한 바깥’은 비극성에 머물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비극을 만든 세상에 대해 질문하고 있습니다.

흔히 ‘브로커’라고 하면 부정적인 의미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작품은 주인공인 탈북 브로커를 통해 이들의 일이 ‘안’과 ‘밖’을 당연하게 규정짓는 세계 속에서 전혀 다른 새로운 길을 여는 일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양구 작가는 ‘작가의 글’에서 “(통상 좋지 못한 이미지로 여겨지는) ‘브로커’란 직업을 통해서, ‘길을 잘 아는’ 가이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생각을 했다”고 썼습니다.

작품을 보면서 아름다운 진주도 어떻게 보면 아름다움을 위해 격리와 배제를 당연시하게 받아들인 결과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안’과 ‘밖’의 규정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이들이 진주 같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이렇게 갈라진 바위틈처럼 좁은 길로 오가는데. 긁히지 않고는 지나갈 수가 없네”처럼 기억에 오래 박히는 대사들이 곳곳에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개막 이후 입소문을 타고 매진을 기록 중인 ‘당연한 바깥’은 아쉽게도 오는 4일 폐막합니다. 이른 시일 내 재공연이 이뤄지면 좋겠습니다.

연극 ‘당연한 바깥’의 한 장면. (사진=프로젝트그룹 쌍시옷)
연극 ‘당연한 바깥’의 한 장면. (사진=프로젝트그룹 쌍시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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