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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표 없는 길, 어떤 곳으로 가야 할지 모른다면?

심보배 기자I 2018.04.30 08:58:57

능내역에서 시작되는 다산길 2코스



[이데일리 트립in 심보배 기자] 구불구불한 양평 6번 국도를 참 많이 다닌다. 늘 스치기만 했던 회색 벽에 쓰인 글이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사랑해, 고마워, 나랑 결혼해죠, 지금보다 더 너를 사랑할게, 6년 동안 고생했어, 등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사랑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었나? 잠시 멈칫한다. 사랑도 가끔 정차될 때가 있다. 쉼 없이 달려온 나에게 “사랑한다”라고 언제 했던가? 나에게 하늘처럼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부모님께는. 폐역이 된 능내역은 또 다른 시작을 말하고 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인생 2막을 살아가는 아빠의 인생과도 닮았다. 이전과 다른 혼자만의 노년을 시작했으니 말이다. 우린, 지금 흔들리고 있을 뿐, 또다시 꽃이 피리라 나는 확신한다.



△멈춰진 능내역, 다시 출발한다.

능내역은 52년 동안 제 역할을 하고 2008년 폐역이 되었다. 전시관 안 열차 시간표와 여객 운임표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이스깨끼통, 통기타, 도시락통, 흑백사진들이 보인다. 철길 앞, 오래된 의자에 시선이 멈춰진다. 비바람에 씻기듯 흔들거리는 의자에 앉아 철길을 본다. 저 철길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없는 시간을 보냈다. 그 소임을 다하고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람으로 보면 한창인 50 춘기에 정년퇴직한 셈이다. 마치 우리들의 아빠처럼 말이다. 오래된 폐역도 나머지 50년을 위해 자신의 곁을 내어준 것일까? 낡고 소박한 폐역은 인생의 반을 넘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던진다. 그곳에서 다시 출발신호를 보낸다.



△다산길 2코스, 때를 알고 피고 지는 자연에서 해답을 찾아간다.

따스한 햇볕을 바랐다. 산들산들 봄바람을 맞고 싶었다. 늘 삶은 만만치가 않다. 능내역에서 출발한 다산길 2코스는 마을 길을 따라 초롱꽃, 제비꽃을 보며, 마재성지에 도착한다. 천주교 성지로 정약용 형제가 천주교를 접했던 곳이다. 다른 성지보다 규모는 작지만, 한옥으로 지어져 이색적이다. 한적한 도로를 지나 예쁜 가게가 보인다. ‘저녁 바람이 부드럽게’ 그래 참 멋있는 이름이다. 단골이 많은 맛집 이라 한다. 다산길 2코스에는 다산 정약용 문학관과 박물관, 생가가 있다. 다양한 볼거리와 교육공간으로 단체관람객과 가족 단위, 연인들도 즐겨 찾는다.



다산생태공원은 팔당호를 따라 약 2.1km에 걸쳐 조성된 강변 산책로다. 다산 정약용의 삶을 그림과 설명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전시되어 있다. 벚꽃은 산책길을 꽃 길로 만들어 놓았고, 여행자는 춘향이처럼 그네를 탄다. 정자에 앉았다. 다산 정약용의 삶은 행복했을까? 지금 나는 잘살고 있는가? 질문은 팝콘처럼 튀어 오른다. 연이어 70을 지난 아빠의 인생은? 그렇게 나는 아빠의 삶과 나의 추억을 연결해본다.



‘하늘바라기’ 그 노래가 생각난다. 어린 시절 아빠와의 추억을 이야기 한 노래 가사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나는 여전히 마냥 좋았던 그 아이가 된다. 참 가슴 따뜻해지는 노래다. “가장 큰 하늘이 있잖아, 그대가 내 하늘이잖아, 후회 없는 삶들, 가난했던 추억 난 행복했다. 아빠야 약해지지마, 빗속을 걸어도 난 감사하니깐, 아빠야 어디를 가야, 당신의 마음처럼 살 수 있을까, 그댈 위로해요 그댈 사랑해요 그대만의 노래로”

노랫말처럼 나는 빗속을 걸어도 감사했다. 여리고 여린 연둣빛 잎새, 산과 흙이 내 뿜는 숲의 에너지는 나를 어린아이로 만들었다. 산길을 지나, 강변길을 따라 걷고 또 걷는다. 내 안에 아빠와 같이. 연꽃마을 글귀처럼 아빠도 수없이 흔들리며 지금의 모습이겠지. 앞으로의 아빠 인생도.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나도 흔들리거나 진다고 해서 두렵지 않다. 왜? 아빠도 흔들리다 든든한 버팀목으로 다시 돌아오리라 믿고 있으니까. 나 역시도. 다시 우린 꽃을 피울 수 있으라 확신한다. ‘두 눈을 감고 걸었다. 그동안 꽃이 피었다.’ 가슴에 이 글이 새겨진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나는 내가 담고 있었던 못다 한 말들을 정리해본다. 6번국도에 새겨진 글귀처럼 사랑해요, 감사해요, 행복해요, 앞으로 더 많이 표현하며 살아야겠다 다짐해 본다. 나의 하늘인 아빠 사랑해요!



살다 보면 주춤할 때가 있다. 이정표 없는 길을 만나 어떤 곳으로 가야 할지 모를 때, 잠시 일상을 벗어나 다산길 2코스를 걸어보자. 정리되지 않았던 내 안에 질문과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지도 모른다. 미루지 않고 늘 그 자리에서, 그 시기에 피었다 지기를 반복하는 꽃과 나무를 보자. 흔들리며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신 부모님을 생각해보자. 설사 그 해답을 찾지 못했더라도 이미 당신은 지금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을 것이다.

△교통편

한적한 드라이브를 즐기고 싶다면 자가용을 이용해 6번 국도를 가보자. 느린 속도로 달리며 알콩달콩 사랑 메시지도 읽어보자. 옆자리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랑해’라고 해도 좋겠다. 주차도 가능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중앙선 기차역에 내려 167번을 타고 구능내역, 마재성지에서 내리면 된다. 정류장 우측에 능내역이 바로 보인다. 능내역에는 자전거 대여도 가능하며, 쉼터 식당에서 간단한 식사도 해결할 수 있다.

△주변 맛집

능내역에서 내리면 터줏대감처럼 자리 잡고 있는 능내옥이 있다. 떡만두국, 막국수, 막걸리, 파전 등 먹거리도 다양하다. 맛도 좋고 주차도 편리해 잠시 주차하고 능내역 산책을 즐겨도 좋다.

‘저녁바람이 부드럽게’는 만두전골과 열수 한상 메뉴가 있다. 유기농 채소와 무공해 식단으로 유명한 맛집이다.

△ 추천노래

노랫말처럼 따뜻한 감성이 돋아나는 행복해지는 노래다. 다산2길을 걸을 때, 드라이브할 때 이 노래를 들어보자. 정은지 ‘하늘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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