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화두 떠오른 디지털 성범죄 대응, 협력체계 부실하면 무용지물

이재운 기자I 2019.06.21 11:03:31
사진=이재운기자
[이데일리 이재운 기자] “디지털 성범죄를 막기 위한 기술 개발은 이미 2009년부터 시작됐지만 지금도 ‘새로운 기술’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개인에 대한 검열 이야기로 연결되면 다시 복잡하게 꼬여버리죠. 단순히 기술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기술과 법·제도가 함께 변화해가는 움직임이 필요합니다.”

지난 20일 오후 열린 ‘R&D기반 디지털 성범죄 피해방지 컨퍼런스’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여성가족부, 경찰청이 디지털 성범죄를 막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자는 취지로 열렸다.

◇‘반성’ 강조한 경찰, 사태 심각성 공감한 장관들

이날의 키워드는 ‘반성’이었다. 임호선 경찰청 차장은 “디지털 성범죄가 중요한 숙제”라며 “엄청난 국가예산이 투입되고 여러가지 좋은 정책들을 많이 제안해주시면 경찰이 현장에서 한마음 한뜻으로 행하겠다”고 말했다. 또 “버닝썬 사건과 웹하드 카르텔 속에서 경찰이 소극적 대처로 비판 받은 점을 기억한다”며 “반성하며 더욱 적극적으로 대처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과 진선미 여가부 장관도 심각한 피해 상황에 공감하며 이런 기술이 필요가 없는 근본적인 해소 상황이 오기를 기대한다는 바람을 보였다.

하지만 이같은 자리는 이미 여러 차례 마련됐고, 그럼에도 여전히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전문가 발표와 토론에서 이어졌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불법음란물 사이트 접속 차단에 관한 기술 개발이 이미 2009년부터 이뤄졌지만 여전히 개인 검열 등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기술 개발만 어려운게 아니라, 그 기술의 실효성 확보가 훨씬 어렵다”고 지적했다.

◇“기술 개발도 중요하지만, 법·제도상 실효성 확보도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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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정부가 R&D 신기술로 차단하겠다는 시도는 좋은데, 신기술 개발 이후 실효성 확보는 굉장히 다른 문제”라며 “불법 동영상 차단 기술에 있어서 사용부처, 법·제도 운영 부처 등이 다 나눠져있는데, 관련 기관들이 초기부터 협의를 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개발 중요성 못지 않게 실효성 확보가 면밀히 뒷받침 되지 않으면, 결국 기술과 아이디어가 사장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개인에 대해 온라인 상에서 국가의 검열 우려에 대한 보완·개선 조치 필요성도 제기됐다. 진보네트워크센터의 미루 활동가는 “현재 관련 규제 내용이 너무 모호하고 광범위하며, 자의적인 해석으로 심의가 이뤄질 수 있다”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사실상 행정력을 사용하는 상황에서 행정부 검열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비판했다.

사이버 수사 전문가인 장윤식 한림대 교수(정보법과학연구소장)는 “2017년 종합대책 만들어서 국가적 문제로 디지털성범죄 다뤄왔음에도 경찰청의 관련 통계는 늘었고, 사회적 이슈 사건도 더 많이 발생하고 있어 ‘지금까지 잘해왔는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며 “사이버 범죄는 국제적으로도 문제로, 특히 해외 서버 문제 수사 문제 등 법과 제도, 기술 측면이 모두 상호작용하게끔 서로 맞춰가야 한다”고 말했다.

전반적인 ‘구조’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불법촬영 음란물을 통한 사이버상의 성폭력 현상이 ‘산업구조’와 ‘문화구조’로 고착되며 서로를 강화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 대표는 “인간을 물상화하고 도구화하는 온라인 ‘성 착취’가 산업화되며 조직범죄, 카르텔로 이어지고 돈을 환산되고 있다”며 “국가가 온라인 공간에 적절한 개입을 위한 인식 전환을 할 필요가 있으며, 사이버 수사의 전문성을 강화해 가해자를 특정해내는 노력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윤식 교수는 “2005년경부터 한국이 IT 강국에다 치안도 좋다는 평가 속에 여러 국가에서 방문해 협력을 논의하기도 했다”며 “우리 정책이 현재 글로벌한 관점에서 안 맞는 부분도 있지만, 잘 키우고 개선하면 디지털 성범죄를 막는 기술과 제도가 좋은 수출 상품이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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