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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즈(FT)에 따르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트럼프 전 정부 시절에 기업 경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의결권 자문사들에게 가했던 규제를 다시 풀어주기로 했다. 대상이 되는 의결권 자문사는 ISS와 글래스루이스 등 국내 기업에게도 영향력이 큰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들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의결권 자문사들의 경영 개입이 심하다는 기업들의 불만을 받아 들여, 자문사들의 의결권 행사지침을 명백한 `권유` 행위라고 규정함으로써 자문사들을 증권거래법 규제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 때문에 만약 의결권 행사지침을 내놓는 과정에서 이해상충의 소지가 있거나 부적절한 면이 드러날 경우 SEC로부터 조사를 받거나 기업들로부터 제소될 우려가 있었다. 아울러 의결권 찬반 권유를 전달하는 과정에서도 투자자들은 물론이고 해당 기업에도 동시에 전달토록 하고, 신속하게 기업의 반론권을 보장하도록 했다.
이날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은 직접 내놓은 성명을 통해 “SEC 직원들에게 지난해 도입된 의결권 자문사들에 대한 규제를 재검토할 것을 지시했다”면서 “이 같은 의결권 자문사들에 대한 규제 지침과 규칙을 시행하지 않도록 권고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비즈니스 라운지 테이블과 미국 상공회의소 등 재계 단체는 의결권 자문사들을 규제하도록 미국 정부를 상대로 강하게 로비를 벌였고,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 입법에 성공했다. 이후 ISS는 이 같은 SEC 규제가 법 위반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에 SEC가 이를 뒤집는 규제 완화에 나서면서 의결권 자문사는 물론 기관투자가들까지도 앞으로 기업을 상대로 한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가 가능해졌다며 반기고 있다.
에이미 보러스 기관투자자협의회 대표는 “이는 투자자들에겐 마치 한여름의 크리스마스와도 같은 반가운 소식”이라며 “지난 정부에서 의결권 자문사에게 채웠던 족쇄가 풀리면서 투자자와 의결권 자문사들이 큰 승리를 받아들게 됐다”고 평가했다.
투자자 단체인 베터마켓을 이끌고 있는 데니스 켈러허 대표는 “트럼프 시절 SEC의 규제는 불법으로 판정받을 가능성이 컸다”면서 “SEC가 경영진보다는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인 만큼 앞으로 투자자들에게 다시 힘이 실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만 ESG 투자가 대세가 되는 상황에서 의결권 자문사들의 힘이 다시 커질 것으로 보여 기업 경영에 대한 개입도 한층 강화될 수 있다. 실제로도 ISS와 글래스루이스는 지난주 엑손모빌 주주총회를 앞두고도 기후변화 대응을 요구하는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추천한 이사 4명 중 3명에 대해 찬성할 것을 기관투자가들에게 권고해 이사회 반란을 적극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