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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세 업계 경험이 풍부한 기존 사업자라도 언제든 사업권을 박탈당할 수 있다는 가설이 이번 입찰전을 통해 증명됐기 때문이다.
올해 서울에 새로 면세점을 낸 한화·신세계·두산 등도 예외는 아니다. 면세점 운영 기한이 만료되는 5년 내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면 언제든 신규 사업자에게 면세점 운영권을 또 뺏길 수 있다.
◇ 5년 한시 면세점, 산업 발전에 악영향
서울 용산에 신규 면세점(HDC신라)을 낸 뒤 연일 고점을 갈아치우던 호텔신라의 주가가 최근 3개월 간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지난 8월 초 13만7000원까지 오른 주가는 지난 13일 10만3000원까지 떨어졌다.
증권가는 현행 경쟁 입찰제도 하에서 5년 뒤 HDC신라 면세점의 사업권이 연장될 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 호텔신라 주가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롯데가 소공점과 잠실 월드타워점의 면세점을 모두 지킬 수 없을 것이라는 세간의 우려도 호텔신라 주가 약세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지난 14일 입찰 결과 뚜껑을 열어보니 우려가 현실이 됐다. 면세 업계는 패닉에 빠졌다. 불과 4개월 전 신규 면세업자로 선정된 한화와 호텔신라·현대산업개발도 충격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제 ‘큰 문제가 없으면 기존 사업자가 그대로 면세 사업을 영위한다’는 업계 불문율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게 됐다. 당장 지난 14일 면세사업권을 따낸 신세계와 두산도 5년 후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면세 업계 관계자는 “면세점을 안정·발전 시키기에 5년이라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며 “5년마다 사업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하는 현행 경쟁 입찰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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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결격 사유가 없으면 10년마다 연장하던 면세점 특허권을 5년 의무 입찰제로 바꾼 이유는 면세 산업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작용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면세산업=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부풀려진 인식이 결국 경쟁 입찰제도 등 면세 산업에 대한 정부의 각종 규제가 강화되는 분위기를 초래했다는 설명이다.
면세 산업이 다른 유통 산업과 다르게 최근 10여년 간 급성장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한류 열풍과 중국인 관광객이 있어서 가능했던 최근의 특수한 상황으로 1980~1990년대까지 대기업들이 면세시장에서 큰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현재 흑자를 내는 면세점도 서울 시내 일부 점포에 국한된 얘기로 인천공항 등 공항 면세점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앞으로 유커 등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면 서울 시내 면세점도 흑자를 내기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상황이 이렇자 면세업계 일각에서는 ‘면세 시장의 성장성은 갈수록 둔화되고 있는데, 정부가 오히려 경쟁력 있는 면세사업자 육성을 가로막고 있다’는 격앙된 목소리를 내놓기도 한다.
면세점 업계 한 관계자는 “5년후 사업을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는 시장에 누가 투자하고 싶겠냐”며 “차라리 면세 사업을 하고자 하는 기업에 모두 사업권을 줘 자율 경쟁이 맡기는 것도 대안”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