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대학병원 임상조교수인 34세 여의사 이은애 씨다. 이 씨는 지난 3일 오후 여의도 근처에서 친구들과 식사 중 머리가 아파 화장실에 갔고, 구토 후 어지러움을 느껴 화장실 밖 의자에 앉아 있던 중 지나가던 행인의 도움으로 근처 응급실로 이송됐다.
구급차 안에서 의식이 있었으나 두통과 구토 증상이 다시 시작되었다. 응급실 내원 후 경련이 일어났고 곧바로 의식이 저하되고, 검사 결과 뇌출혈(지주막하출혈)로 진단 받았다.
이 씨의 보호자는 수술을 해도 예후가 불량할 수 있다는 전문의 소견을 듣고, 중환자실에서 보존적 치료를 받기로 결정했다. 이 씨는 중환자실 치료 중 경과가 호전되지 않고 자발호흡 및 뇌간반사 소실 등 뇌사소견을 보였다. 이 씨의 상태 설명을 들은 보호자는 여전히 뇌사상태 라는게 믿겨지지 않았지만, 장기이식센터에서 면담 후 뇌사자 장기기증을 어렵게 결정했다.
12월 4일 이 씨는 서울성모병원 외과 중환자실로 이송되었다. 6일 오후 서울성모병원에서 이식 수술이 진행되었고, 심장, 폐장, 간장, 신장(2개)의 뇌사자 장기 기증으로, 총 5명의 환자에게 새 생명을 나누어 주었다.
고인은 중앙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삼성서울병원에서 수련 후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임상조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가족들은 아픈 환자를 돌보기 위한 사명감으로 의사가 된 고인의 뜻을 받들고, 마지막까지 생사에 기로에 있는 이들을 살리기 위해 슬픔 마음에도 어렵게 기증 결정을 내렸다.
고인의 부친은 “결혼 후 7년 만에 어렵게 얻었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맏딸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고, 지켜주지 못한 죄스러운 마음에 딸 아이 친구들 외에는 주변에 부고 소식을 알리지도 못했다”며, “뇌사라는 말에도 믿을 수 없어 깨어날 것 같은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았지만, 생명을 살리는 일을 업으로 살던 딸이 생의 마지막 까지 의사의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환자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에, 마음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힘들고 아프지만 장기기증을 어렵게 결정하였다”고 말했다.
고인의 여동생은 “언니는 늘 중·고등학교 전교 1등 수석으로, 졸업한 고등학교의 최초 의대생, 의대 차석 졸업, 전공의 전국 1등을 하는 등 훌륭한 의료인이자 나에게는 자랑스러운 인생의 모토 자체였다”며, 이어 가톨릭 세례를 받기 위해 함께 교리공부를 마치고, ‘언니 친구 잘 만나고 와’ 하고 인사 하고 보낸 게 마지막 모습이라며 ”의사 생활로 힘든 와중에도 가족들의 고민 얘기도 항상 들어주고 마음도 헤아려주고 가족을 늘 먼저 위했던 언니를 이렇게 보내야 하는 게 믿어지지가 않고 보내기가 힘들다”며 울먹였다.
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장 박순철(혈관이식외과) 교수는 “의사라는 직업으로 최선을 다했던 딸이 끝까지 환자분들에게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고인 가족의 숭고하고 뜻깊은 의지가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며 소감을 밝혔다.
한편 서울성모병원은 국내 첫 의사(醫師) 장기기증으로 시작한 간이식이 올해 30주년이었다. 1993년 의사인 아버지를 본받아 가톨릭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인턴으로 재직하던 중 故 음태인(당시 25세) 의사가, 불의의 사고로 뇌사판정 후 간 등 뇌사자 장기기증으로 5명에 새 삶을 선물했다. 직장생활을 하던 중 간경화 말기를 진단 받고 한 달 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었지만, 기적처럼 장기기증을 받게 되었던 첫 의사(醫師) 간이식 수혜자는 현재까지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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